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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문화를 담는 방식: [퀸스 갬빗]의 젠더, [뤼팽]의 인종 스포 있습니다!!! 몇 달 전,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이 꽤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인기를 끈 이유는 물론 다양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그 서사가 [사이코지만 괜찮아] 류의 서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주인공 남녀 간의 관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서사에서 제공하는 박진감 또한 상당 부분 그 둘 사이 관계에 걸린 강한 장력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퀸스 갬빗]과 [사이코지만 괜찮아] 모두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식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타인의 개입과 동시에 소멸되는 감정이기에 가장 개인적인 것이고, 그러므로 가장 보편적이고 해결하기 어려움 부정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둘 모두 (다소 거칠게 설명하자면) ‘나에게 대체 왜 이렇.. 2021. 1. 18.
[소설] 대화록 1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어떤 거요?”“말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이, 사실은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요.”“글쎄요. 어릴 때는 몇 번 해본 것 같네요.”“그렇죠. 그런데 요즘에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참, 쓸데없는 생각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계시네요.”“인생을 낭비한다는 생각, 그것조차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진짜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요?”“의미가 없죠.”“그렇죠.”“그러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뭐, 이유는 없지요.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니다? 만약 진짜가 아니라 어찌어찌 매트릭스 마냥 탈출했다고 한다면, 그 다음엔 뭐가 있는 걸까요? 그 세계는 과연 진짜인 걸까요?”“그것도 장담할 수는 없겠지요.”“그러니, 말하자면 하.. 2021. 1. 14.
2020년: 살아보니 이렇더라 1 삶이란 것은 켜켜이 쌓여가기 마련이다. ‘쌓여간다’라는 표현은 너무나 수직적인 방향성을 가진 단어라 단편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 말고는 아직까지 한 사람의 역사를 정의하는 언어적 방법을 잘 모르겠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성향, 사고방식, 행동 따위가 변화하는 것은 기나긴 삶의 결과물로써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 그렇게 표현하면 되지 뭐하러 ‘켜켜이 쌓여간다’라고 표현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딱딱 떨어지는 명쾌한 표현들과 시적이고 비유적인 표현 너머의 무언가를 지향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얼마 전에 #내가_늙어보일만한_사실을_말해보자 였나, 하여튼 그런 해시태그가 sns상에서 한창 유행할 때가 있었다. 내가 페이스북에서 팔로우 하는 중년 이상의 누군가.. 2020. 12. 29.
자살의 기록: 우리는 속죄할 수 없다 나는 몇 년 전 온라인으로 고민상담 채팅방을 운영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들어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나는 그날 기분에 따라 무미건조하게, 적극적으로, 따듯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상담의 질은 매번 달랐을 테지만, 이름도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감사해했고, 나는 그 사실 자체에 보람을 느꼈다. 그 일에 보람이 아닌 충격을 느꼈던 때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채팅방에 접속한 익명의 누군가에게 자신이 곧 자살을 앞두고 있으며, 대화가 끝나면 자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나는 내가 말을 꽤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굳은 결심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바뀌지 않았다. 그 때 충격을 받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고, 지인들.. 2020. 10. 31.
수험생들에게: 만약에 대하여 수능이 채 50일도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대학 입시를 한 지 좀 되기도 했고, 수능으로 대학에 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능에 대해선 수험생들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지만, 나의 입시경험을 토대로 수험생들 입장에서 이해가 될 수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글을 써보려 한다. 나는 17년도 연세대학교 경제학부에 다니다가 반수를 통해 18년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로 학교를 옮긴 사람이다.(17년도 입시 결과는 연대경제 학생부교과, 학생부종합, 고대 경영 학생부종합 합격이었고 서울대 자전 지균전형 불합격이었다) 의무 채플 이수의 좆같음과 연세대 1학년을 다니는 동안 어머니의 일단 써보기나 하라는 강한(?) 권유로 17년도 자소서를 수정해 서울대학교에 제출해 1차에 합격했고, 다행히 면접도 무난히.. 2020. 10. 25.
가추와 오비이락(烏飛梨落), 인과관계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진다. 불이 켜진 이유는 누군가가 스위치를 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어떤 시점에 불이 켜졌기 때문에 현재 누군가가 스위치 누른 것은 아닐까?" 0. 뇌피셜임. 1. 내가 어떤 대상 A를 보았을 때, 그것이 A로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A이기 때문이 아니라, 말하자면 내가 그것을 A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2. 즉, 인간의 인식은 연역적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A는 a로 보인다.' 라는 것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실제로 인식하는 부분은 a뿐이다. 우리가 A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이상 a를 통해 A는 인식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가추'의 영역이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의 인식체계는 P(A|a)와 P(a|A) 사이의 관계를 저울질한다. 더 나아가 a이전의.. 2020.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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