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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0

증류뇌 파괴 살인죄 적용 여부, 오늘 대법원 판결…5년간의 법적 논쟁 종지부 2045년 11월 3일 층간소음을 이유로 멍키스패너를 휘둘러 이웃의 증류 뇌를 파괴한 A 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3일 나온다. 대법원은 살인죄 혐의로 기소된 30대 A 씨에 대한 상고심 판결을 이날 오전 11시 15분 선고한다. A씨는 지난 2040년 3월 경 층간소음을 이유로 윗집에 살던 98세 B 씨의 증류뇌(Distilled Brain)를 몽키스패너를 휘둘러 파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층간소음의 원인이 B 씨가 끌던 걸음보조기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A 씨에 대한 엄벌 청원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B 씨가 2035년 이후 뇌사판정을 받고 나서도 5년 간 증류 뇌를 통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살인죄 적용 가능 여부를 두고 각계의 .. 2024. 4. 4.
[소설] 대화록 1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어떤 거요?”“말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이, 사실은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요.”“글쎄요. 어릴 때는 몇 번 해본 것 같네요.”“그렇죠. 그런데 요즘에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참, 쓸데없는 생각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계시네요.”“인생을 낭비한다는 생각, 그것조차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진짜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요?”“의미가 없죠.”“그렇죠.”“그러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뭐, 이유는 없지요.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니다? 만약 진짜가 아니라 어찌어찌 매트릭스 마냥 탈출했다고 한다면, 그 다음엔 뭐가 있는 걸까요? 그 세계는 과연 진짜인 걸까요?”“그것도 장담할 수는 없겠지요.”“그러니, 말하자면 하.. 2021. 1. 14.
[소설] 물고기의 언어 요즈음 수민의 가장 큰 고민은 큰 어항을 새로 하나 사는 것이다. 그녀는 죽은 물고기들을 그곳에 모아둘 생각이었다. 모두 그녀의 친구들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이 땅에 묻히기도 원하지 않으며, 그들의 시체를 변기에 떠내려 보내기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시체를 떠나보낼 때마다 다른 물고기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땅에 묻어주는 것은 확실히 인간의 방식이었고, 변기 물에 떠내려 보내는 것은 더 확실한 인간의 방식 -그것도 똥이나 오줌을 처리하는 - 방식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들은 그래서 땅에 묻히는 것을 그나마 더 선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방식이 명예롭거나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렇게 떠나보낸 친구가 벌서 열일곱이었다. 수민은.. 2020. 3. 22.
진술서 나는 이제 열다섯 살이다. 나의 삶이라는 것은 참 가벼운 것인데, 그것은 내가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붙잡고 물어보라, 열다섯 살이 뭘 아느냐고. 그러면 그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무언가를 더 많이 알게 됨으로써 명확하게 알던 무언가를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거짓말은 어쨌든 들통난다는 사실. 어른들은 아는 것이 너무 많은 나머지 일부러 아는 것을 잊으려 종종 거짓말을 한다. 그런다고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닌데. 내 엄마도 번개탄을 사놓고 내가 그것을 왜 샀는지 물어보았을 때 여름휴가를 가서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것이라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했다. 나는 살면서 휴가라는 것을 한 번도 가보지 .. 2020. 3. 15.
박성연을 위한 서사 누군가의 정액이 누군가의 자궁 속에 들어가 난자와 정자가 만나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무엇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저의 존재 그 자체이겠지요. 적어도 저의 존재로 인해 인간 탄생 과정의 시작점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약 열 달 쯤 전에 최소 한 번 발생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저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한 때 존재했었다는 사실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애초부터 없었다면, 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기 때문이지요. 마치 성경에 나오는 신처럼요. 신은 있는 줄도, 없는 줄도 모르니까 도무지 있었다더라, 없었다더라, 하는 이야기 자체가 성.. 2019. 11. 26.
교차로 6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도서관에 갔다가, 하루종일 공부를 하고, 아, 중간에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밥도 먹고(거기 돈까스가 참 맛있다), 밥 먹으면 이도 닦아야지, 다시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 유튜브 좀 보다가, 그러다 자고, 다시 6시에 일어난다. 이것은 그, 혹은 그녀가 잠들기 직전에 세운 나름의 계획이었다. 이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는 몰랐다. 아마 그녀 자신도 몰랐을지 모른다. 어찌 됐든 간에, 그녀는 다음날 아침을 위하여 일찍 잠을 청했다. 몇 번 뒤척이더니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어 알람을 맞추고, 다시 끄고, 아 맞다, 화장실 불 안 껐다, 다시 일어나서 갔다가, 간 김에 볼일도 보고, 일어난 김에 물도 좀 마시고, 다시 돌아오니 .. 2019.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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