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진다. 불이 켜진 이유는 누군가가 스위치를 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어떤 시점에 불이 켜졌기 때문에 현재 누군가가 스위치 누른 것은 아닐까?"
0. 뇌피셜임.
1. 내가 어떤 대상 A를 보았을 때, 그것이 A로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A이기 때문이 아니라, 말하자면 내가 그것을 A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2. 즉, 인간의 인식은 연역적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A는 a로 보인다.' 라는 것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실제로 인식하는 부분은 a뿐이다. 우리가 A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이상 a를 통해 A는 인식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가추'의 영역이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의 인식체계는 P(A|a)와 P(a|A) 사이의 관계를 저울질한다. 더 나아가 a이전의 A를 상정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뇌는 베이지안인 셈이다.
3.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A라는 것이 순전히 정신적인 대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실제로 영아는 '보는 것이 사고하는 것'인 상태로 태어나는데, 인식으로부터 개념을 분리해내 추상적이고 조작적인 사고를 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즉, 우리의 인식 체계로 a라는 자극이 들어올 때 a는 A와 혼재된 상태로 들어온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지만, 이미 인식된 대상을 쪼개는 것은 좀 더 쉽다.
4. 좀 더 일반화해서 얘기하면, 인간의 뇌는 인식되는 현상에 대해 자동적으로 그 현상을 설명할만한 가설을 세운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가설'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딸려 들어온다. 예를 들어 '오비이락'이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해 보자.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진다. 우리의 뇌는 순간 '까마귀가 배를 떨어트렸다!'라고 상정한다. 누구나 순간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을 곧이곧대로 믿느냐, 아니면 '배가 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할만한 다른 가설들을 따져보느냐는 그 이후 해당 현상을 관찰한 개개인의 사고 능력에 달렸다.
5. 즉, 인과추론은 인지발달의 최상위 단계라고 볼 수도 있겠다. 'A이면 B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선 B가 인식되는 방식인 b를 알아야 하고, A가 인식되는 방식인 a를 알아야 한다. 즉, b를 '상상하고', a를 '일으켜야', 최종적으로 'A이면 B이다'라는 명제가 완성된다.
6.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진다. 불이 켜진 이유는 누군가가 스위치를 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어떤 시점에 불이 켜졌기 때문에 현재 누군가가 스위치 누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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