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12 능동적으로 구축한 수동적인 방식의 능동적 삶 0.가끔 가다 누군가에게 나의 삶을 설명할 때면 가파른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지듯 살아간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 비유가 담고 있는 상황은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내가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일들이 날 스쳐지나가고, 나는 어찌 저찌 삶을 유지해나가고 있지만 힘들다. 여기저기 부딪혀 뼈가 부러지고 피가 흐르는데, 내가 이 산의 가장 깊숙한 골짜기에 이르기 전까지 이 비탈길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물론 이런 비유는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최근 몇 년 간의 내 삶을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비유 중 하나일 것이다. 사명감을 갖고 영혼을 갈아넣었던 사업은 말아먹었고, 거기에 불을 지피던 ‘나는 특별한 존재여야 한다’는 (사업가의 기초적인 자질인) 허영심은 이제 좀 더 철이 들면서 사그라들고 말았다. 사업을.. 2024. 8. 25.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볼까?? 나는 원래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최근 글쓰기를 아예 못하고 있다. 늘 그랬듯 이런저런 일들을 벌리고 다니다보니 이래저래 바쁜 일들이 많기 때문. 그런데 도대체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고 여러 일들이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생각의 속도가 내 안에서 너무 빨라져서 이걸 주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결국은 글쓰기가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 바쁘다는건 핑계고 지하철에서 유튜브 볼 시간에 글 쓰면 된다는걸 알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피곤하고, 여기 블로그에 쓰는 글들은 되게 각잡고 쓴것들이 많아서 쉬이 도전하기 어렵고 뭔가 제대로 글을 꾸준히 쓸 외적인 계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안했으니, 바로 글쓰기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모임의 규칙은 단.. 2024. 3. 13. 2020년: 살아보니 이렇더라 1 삶이란 것은 켜켜이 쌓여가기 마련이다. ‘쌓여간다’라는 표현은 너무나 수직적인 방향성을 가진 단어라 단편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 말고는 아직까지 한 사람의 역사를 정의하는 언어적 방법을 잘 모르겠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성향, 사고방식, 행동 따위가 변화하는 것은 기나긴 삶의 결과물로써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 그렇게 표현하면 되지 뭐하러 ‘켜켜이 쌓여간다’라고 표현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딱딱 떨어지는 명쾌한 표현들과 시적이고 비유적인 표현 너머의 무언가를 지향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얼마 전에 #내가_늙어보일만한_사실을_말해보자 였나, 하여튼 그런 해시태그가 sns상에서 한창 유행할 때가 있었다. 내가 페이스북에서 팔로우 하는 중년 이상의 누군가.. 2020. 12. 29. 자살의 기록: 우리는 속죄할 수 없다 나는 몇 년 전 온라인으로 고민상담 채팅방을 운영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들어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나는 그날 기분에 따라 무미건조하게, 적극적으로, 따듯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상담의 질은 매번 달랐을 테지만, 이름도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감사해했고, 나는 그 사실 자체에 보람을 느꼈다. 그 일에 보람이 아닌 충격을 느꼈던 때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채팅방에 접속한 익명의 누군가에게 자신이 곧 자살을 앞두고 있으며, 대화가 끝나면 자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나는 내가 말을 꽤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굳은 결심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바뀌지 않았다. 그 때 충격을 받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고, 지인들.. 2020. 10. 31. 수험생들에게: 만약에 대하여 수능이 채 50일도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대학 입시를 한 지 좀 되기도 했고, 수능으로 대학에 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능에 대해선 수험생들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지만, 나의 입시경험을 토대로 수험생들 입장에서 이해가 될 수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글을 써보려 한다. 나는 17년도 연세대학교 경제학부에 다니다가 반수를 통해 18년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로 학교를 옮긴 사람이다.(17년도 입시 결과는 연대경제 학생부교과, 학생부종합, 고대 경영 학생부종합 합격이었고 서울대 자전 지균전형 불합격이었다) 의무 채플 이수의 좆같음과 연세대 1학년을 다니는 동안 어머니의 일단 써보기나 하라는 강한(?) 권유로 17년도 자소서를 수정해 서울대학교에 제출해 1차에 합격했고, 다행히 면접도 무난히.. 2020. 10. 25. 가추와 오비이락(烏飛梨落), 인과관계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진다. 불이 켜진 이유는 누군가가 스위치를 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어떤 시점에 불이 켜졌기 때문에 현재 누군가가 스위치 누른 것은 아닐까?" 0. 뇌피셜임. 1. 내가 어떤 대상 A를 보았을 때, 그것이 A로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A이기 때문이 아니라, 말하자면 내가 그것을 A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2. 즉, 인간의 인식은 연역적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A는 a로 보인다.' 라는 것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실제로 인식하는 부분은 a뿐이다. 우리가 A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이상 a를 통해 A는 인식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가추'의 영역이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의 인식체계는 P(A|a)와 P(a|A) 사이의 관계를 저울질한다. 더 나아가 a이전의.. 2020. 9. 6.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