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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물고기의 언어 요즈음 수민의 가장 큰 고민은 큰 어항을 새로 하나 사는 것이다. 그녀는 죽은 물고기들을 그곳에 모아둘 생각이었다. 모두 그녀의 친구들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이 땅에 묻히기도 원하지 않으며, 그들의 시체를 변기에 떠내려 보내기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시체를 떠나보낼 때마다 다른 물고기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땅에 묻어주는 것은 확실히 인간의 방식이었고, 변기 물에 떠내려 보내는 것은 더 확실한 인간의 방식 -그것도 똥이나 오줌을 처리하는 - 방식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들은 그래서 땅에 묻히는 것을 그나마 더 선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방식이 명예롭거나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렇게 떠나보낸 친구가 벌서 열일곱이었다. 수민은.. 2020. 3. 22.
진술서 나는 이제 열다섯 살이다. 나의 삶이라는 것은 참 가벼운 것인데, 그것은 내가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붙잡고 물어보라, 열다섯 살이 뭘 아느냐고. 그러면 그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무언가를 더 많이 알게 됨으로써 명확하게 알던 무언가를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거짓말은 어쨌든 들통난다는 사실. 어른들은 아는 것이 너무 많은 나머지 일부러 아는 것을 잊으려 종종 거짓말을 한다. 그런다고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닌데. 내 엄마도 번개탄을 사놓고 내가 그것을 왜 샀는지 물어보았을 때 여름휴가를 가서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것이라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했다. 나는 살면서 휴가라는 것을 한 번도 가보지 .. 2020. 3. 15.
박성연을 위한 서사 누군가의 정액이 누군가의 자궁 속에 들어가 난자와 정자가 만나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무엇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저의 존재 그 자체이겠지요. 적어도 저의 존재로 인해 인간 탄생 과정의 시작점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약 열 달 쯤 전에 최소 한 번 발생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저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한 때 존재했었다는 사실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애초부터 없었다면, 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기 때문이지요. 마치 성경에 나오는 신처럼요. 신은 있는 줄도, 없는 줄도 모르니까 도무지 있었다더라, 없었다더라, 하는 이야기 자체가 성.. 2019. 11. 26.
불면의 습관 통 잠에 들지 못하는 요즈음이다.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잠에 들지 못할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 주된 원인인 것 같다. 군 입대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드느라 속이 편치 못한 것도 있고, 무언가 할 일이 남아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묘한 죄책감도 들어서 그냥 멀뚱히 눈을 뜨고 유튜브나 보고 노래나 들으면서 새벽이 오길 기다리는 것 같다. 사실 할일이 없지는 않다. 대학교에 처음 입학한 직후부터 쭉 나만의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고, 이제 비로소 그 사업의 론칭을 앞두고 이것저것 서류 작업이니, 제품 디자인이니 하고 있기도 하고, 그것과 별개로 앱 개발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설계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잠이 안 온다면 일어나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공부.. 2019. 8. 22.
교차로 6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도서관에 갔다가, 하루종일 공부를 하고, 아, 중간에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밥도 먹고(거기 돈까스가 참 맛있다), 밥 먹으면 이도 닦아야지, 다시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 유튜브 좀 보다가, 그러다 자고, 다시 6시에 일어난다. 이것은 그, 혹은 그녀가 잠들기 직전에 세운 나름의 계획이었다. 이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는 몰랐다. 아마 그녀 자신도 몰랐을지 모른다. 어찌 됐든 간에, 그녀는 다음날 아침을 위하여 일찍 잠을 청했다. 몇 번 뒤척이더니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어 알람을 맞추고, 다시 끄고, 아 맞다, 화장실 불 안 껐다, 다시 일어나서 갔다가, 간 김에 볼일도 보고, 일어난 김에 물도 좀 마시고, 다시 돌아오니 .. 2019. 8. 17.
화장혀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19.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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