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열다섯 살이다. 나의 삶이라는 것은 참 가벼운 것인데, 그것은 내가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붙잡고 물어보라, 열다섯 살이 뭘 아느냐고. 그러면 그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무언가를 더 많이 알게 됨으로써 명확하게 알던 무언가를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거짓말은 어쨌든 들통난다는 사실. 어른들은 아는 것이 너무 많은 나머지 일부러 아는 것을 잊으려 종종 거짓말을 한다. 그런다고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닌데. 내 엄마도 번개탄을 사놓고 내가 그것을 왜 샀는지 물어보았을 때 여름휴가를 가서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것이라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했다. 나는 살면서 휴가라는 것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며칠간 일 하지 않아도 집에 먹을 게 떨어질 일이 없는 여유로운 사람들이나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엄마보다도 더 강한 확신을 가지고 가까운 시일 내에 그녀가 자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는 나를 증오했으므로, 나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엄마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라는 생각을 했고, 역시나 엄마는 번개탄을 피우고 죽었다. 엄마는 어찌나 철저했던지 방 안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만한 구멍들은 전부 다 청테이프로 막아뒀었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은 나에겐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여졌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를 위하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단 한 번도 살면서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게 그나마 편하게 죽는 방법인 것 같기는 해서 그것도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중적인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무튼 나는 당신이 나에게 와서 내가 윤현이를 괴롭힌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됐고, 그래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에도 어머니에게서 받았던 것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심지어 우습기까지 했다. 나는 내 엄마에게서 거짓말하는 자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당신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내 엄마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윤현에게서도 이미 죽음을 읽을 수 있었다. 윤현은 죽으려고 했기 때문에 누구든 살면서 좆같았던 사람들의 이름은 다 적어 재낀 것이고, 그중 내가 우연히 그가 죽기 하루 전에 그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운 나쁘게 적혔을 뿐이다. 어차피 내가 이렇게 쓴다 하더라도 당신은 내 진술서를 보면서 이 아이가 하나도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화내는 용도로 사용하겠지만.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당신이 저지른 죄를 잊을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안타깝게도 당신이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 신이라는 가상의 존재가 당신을 끊임없이 괴롭힐 테니 말이다. 진실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 진실은 진실을 구성하는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새로이 생겨난 거짓을 덮으려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신이 참 안타깝다. 당신도 빠른 시일 내에 자살하길 바란다. 역겨운 어른.
어쨌든 나는 당신이 일단 진술서를 쓰라고 했으니 진술서를 써야겠다. 진술서라는 것도 우습다. 일단 붙잡아놓고 내가 잘못한 것을 적으라고 윽박지르는 꼴이라니. 그런데다 이곳 교무실은 죽은 윤현이 문제를 처리하느라고 아주 난리도 아닌데, 이런 상황의 한가운데에 날 앉혀놓을 생각을 하다니. 윤현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는 사람들이 신문사에서 전화 오는 것을 막느라 쩔쩔매는 꼴을 보고 있으니 우스울 뿐이다. 나는 꼭 일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당신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진술서를 적기 위해 당신이 그때 했던 일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때도 학교폭력 사건이었다. 틈만 나면 개 같은 짓거리를 하던 지금은 전학 간 세형이 이야기다. 그 자식은 답도 없는 자식이다. 하는 짓 하나하나 전부 다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녀석이었다. 같은 반이었지만 모두가 싫어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깔봄으로써 자기만족하면서 사는 놈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세형이한테 잘해줬다. 뭐 빌려달라 하면 빌려주고, 숙제 도와달라면 도와주고. 물론 나도 누굴 도울 처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냥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적을 만드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난 태어날 때부터 엄마라는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잘 안다. 그래서 난 지금도 그 일에 대해 떳떳하다. 세형이는 따돌림을 못 이기고 전학 갔지만.. 아무튼 걔네 엄마가 걔가 따돌림당한다는 사실에 화가 잔뜩 나서 학교를 한번 뒤집은 다음 세형이가 지목한 놈들이 교무실로 끌려갔고, 개중에 내가 걔랑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내는 걸 못마땅해했던 또 다른 애가 나도 같이 괴롭힌 애라고 지목해서 나도 덩달아 끌려가게 된 것이었다. 놀랍게도 나를 지목했던 그 친구랑도 난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잘 어울렸었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나에게 따로 와서 한다는 말이 당신이 세형이를 괴롭혔던 다른 사람을 불지 않으면 학교를 못 다니게 해 주겠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불었다는 거였다. 나는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명색이 학생부장이라는 당신의 그 같잖은 ‘수사’ 방식이 우습고 귀찮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만만한 내 이름을 분 그 자식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당신도 골치 아픈 사건 처리하느라 상당히 귀찮았던 와중에 애미 뒤진 놈의 이름이 나와 어느 정도는 기고만장했던 것 같다. 당신은 날 불러다 놓고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네가 괴롭힌 것을 하나하나 다 적고 잘못했다고 적어라’라고 겁박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잘못한 게 없다고 적고선 교무실에 앉아 수업도 듣지 못한 채 몇 시간을 기다렸고, 당신은 다른 애들이 다 집에 간 뒤에 다른 선생과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서 땀을 잔뜩 흘리고 와서는 배드민턴 채로 내 머리를 툭툭 치면서 으이그 이 모자란 새끼야, 하고 날 모욕했었다. 지금도 상황 자체는 비슷하지만 당신 스스로 당신 잘못을 알아서 그런지 나에게 그렇게까지 모욕적인 말을 하진 않았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그때보단 지금이 나에겐 좀 더 나은 것이다. 물론 세형이는 전학 갔지만 윤현이는 죽었다. 그러나 애미 뒤진 놈으로 살던 와중에 친구 뒤진 놈이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추가된다고 내 인생이 더 좆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당신이 어떤 일이 터지면 열넷, 열다섯, 열여섯 애들 데리고 사건을 조사한답시고 하는 짓거리가 중요한 것이다. 당신의 부족한 지능을 극복하고자 협박과 겁박으로 애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그걸 바탕으로 없는 사실도 지어내게 하는 그 무능력이 문제다. 내가 아는 한 우리 학교 애들은 너무나도 멍청해서 당신의 그런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조차 모른다. 당신은 나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내 엄마가 어릴 적에 번개탄을 피운 덕에 세상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법을 진작에 배웠다. 삶이란 것은 계속해서 꾸역꾸역 내 입 안으로 들어오게 마련인 것이고, 언제고 그 맛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내 정신이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마냥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은 미치게 마련이다.
윤현이 또한 당신의 멍청함의 피해자이다. 개 좆같은 하나님의 뜻으로 세운 학교랍시고 당신네 교사들은 학칙에다가 연애 금지 조항을 넣어뒀다. 예수가 평생을 솔로로 산 것이랑 우리가 연애를 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추측하건대 당신네 ‘보수적인’ 교사들은 그냥 우리같이 어린 애새끼들이 당신네들 없는 곳에서 손 잡고 키스하는 것이 마냥 배알 꼴리는 것뿐이다.. 학교에 돈이 없다고 하면서 급식은 개판으로 내놓고 도서관은 텅텅 비게 해 놓고선 교장이란 작자는 에쿠스를 끌고 다니는 곳이니, 욕망으로 가득 찬 선생들 대가리에 뭐가 들어있는지 안 봐도 뻔하다.
아무튼 당신은 당신이 직접 윤현이를 ‘취조’했으니 윤현이가 세희와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어쩌다 당신같이 멍청한 작자에게 연애하는 것을 들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나와 다른 학생들에게 으레 그렇게 하듯, 사회적 동물을 앉혀다가 왜 사회적 동물이 되었는지 반성하라고 윽박질렀을 것이다. 스스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나 알고 지껄이는 거였을까. 그리고선 부모들에게 연락해선 아주 못된 상스럽고 불건전한 짓을 하다가 걸렸다고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였을 것이고, 마냥 서로를 좋아할 뿐이었던 윤현이와 세희는 갑자기 웬 머저리 선생 하나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도 참 웃긴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 윤현의 전 여자 친구의 부모 되는 사람은 매일 학교 끝나는 시간에 그녀를 데리러 온다. 혹시 학교 끝나고 바로 집에 오지 않고 어디서 섹스하고 있을까 봐.. 안타깝게도 섹스는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 당신은 우리 학교에 그럴만한 장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시길 바란다. 열다섯 살 난 애새끼들의 음란한 짓거리를. 당신이 미친 듯이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성장이라는 것을.
어찌 됐든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신 같은 머저리들에게 잘못 아닌 일에도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괜히 밉보였다간 인생이 좆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게 당신네들 수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애인 하나 만드는 일에도 당신네들 허락이 필요하다. 머릿속이 뭘로 가득 차 있는지 연애한다는 애들만 보면 반쯤 미치는 당신은, 윤현을 겁박하여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대라고 했다. 이건 윤현에게서 직접 들은 것이다. 왜냐면 윤현이 이름을 불었던 아이들이 전부 다 교무실에 끌려가 윤현과 똑같은 일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복도에서 아이들이 그를 둘러싸고 왜 그런 짓을 했냐 따져 물었고,, 그는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고 덜덜 떨며 항변하다 도망갔다. 나는 지나가다가 그 장면을 목격했고, 그에게서 죽음을 보았다. 두려움은 단순히 생존 욕구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난 그때 처음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지금 그 자리에 있었던 아이들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한다면 그 아이들도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는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볼 때 가해자는 한 명이다.
사실 나도 그때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의 조사 대상이 되진 않았었다. 왜냐하면 윤현이 몰랐으니까. 운 좋게 당신의 눈길을 피하긴 했지만 난 그녀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게 된 애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엄마한테 들키면 어떡해, 선생님한테 들키면 어떡해, 친구들이 알게 돼서 날 고자질하면 어떡해 -각종 ‘어떡해’들. 나는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그녀는 번개탄 피우고 죽은 내 엄마 얘기에 동정심을 느껴서 날 만나던 거였으니까. 그러나 세상 그 누구의 슬픈 이야기도 내가 책상다리에 발가락 찧은 것보다 더 중요하진 않은 게 사람이니까, 난 그녀에게 이해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키스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고,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아주 짧게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댔다. 나 또한 그녀의 동정심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그녀와 만나지 못하게 된 뒤 한동안 외로움을 느꼈다. 영화나 소설에나 나올 법한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주었던 것은 어쨌든 그녀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죽어도 어른스러운 인간은 못 되는 사람이므로 그런 일에 아직은 쉽게 괴로워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윤현은 혼자 밥을 먹었다. 나도 밥을 혼자 먹었기 때문에 한 번은 그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의 일로 인해서 윤현이 유서에 나의 이름을 적지 않았나 싶다. 나는 그에게 내가 그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선 내가 위에서 내 친구가 당신에게 내 이름을 말해서 겪게 된 일도 설명했다. 아마 네가 이름을 부른 다른 아이들도 똑같은 일을 겪었을 거야,, 하고 설명해줬다. 학교라는 곳에서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은 너무나도 쉽사리 규정되는 것이고, 이유야 갖다 붙이기 마련이라는 것도 설명해줬다. 결국 네가 한 행동은 선생들에겐 어쩌면 잘한 일이기도 한데, 차라리 속 편하게 당당히 다니는 건 어떻냐고 해줬다. 선생님들이 두려워서 한 일이잖아, 적어도 넌 별 징계받지 않고 학교를 잘 다니고 있잖아, 너만 떳떳하면 되지, 하고.
난 그에게 떳떳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그는 대답하지 않고 밥을 우걱우걱 씹어댔다.
다음날 윤현은 죽었다. 그다음 날이 오늘이다.
당신은 아무 잘못 없는 것 마냥 나를 추궁했지만, 모든 일의 시작은 결국 당신이다. 죽음은 찰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죽음엔 과정이 있다. 물론 책임소재를 한없이 과거로 되돌리는 일은 못할 짓이다. 그렇다간 결국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정도로 먼 과거에까지 사건의 원인을 묻게 될 테니까. 그러나 난 도의적인 것에 관해 묻는 것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교사의 지위라는 것에 대해 묻는 것이다. 당신은 아마 한 학생을 죽여놓고도 죽음이라는 사건의 맨 첫 번째 단계에 서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이 사건을 전담하여 조사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것이고,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록 선생질을 해댈 것이다. 그러나 난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이 진술서를 당신이 어떻게 처리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 일로 인하여 나 또한 징계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인생은 이미 좆된 지 오래고, 아마 당신 인생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당신에겐 하나님이 있겠지만.
2014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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