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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성연을 위한 서사

by 고우 2019.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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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정액이 누군가의 자궁 속에 들어가 난자와 정자가 만나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무엇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저의 존재 그 자체이겠지요. 적어도 저의 존재로 인해 인간 탄생 과정의 시작점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약 열 달 쯤 전에 최소 한 번 발생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저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한 때 존재했었다는 사실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애초부터 없었다면, 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기 때문이지요. 마치 성경에 나오는 신처럼요. 신은 있는 줄도, 없는 줄도 모르니까 도무지 있었다더라, 없었다더라, 하는 이야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잖아요. 물론 누군가는 발끈하겠네요. 그래요 그러면 누군가 저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에 대해 상상의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해 봅시다. 제 얼굴, 성격, 심지어 가정사까지 다 그대로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거죠. 그렇다 할지라도 상상 속의 제가 진짜로 눈 앞에 있다가 사라진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니까짓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 것은 어떻게 확신하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거라고 믿어요.
 그런데 참 초라하지 않나요. 우리 각 존재 자체로 이 세상에 대해 밝힐 수 있는 사실이라곤 그냥 그 생물학적 엄마와 생물학적 아빠의 난자와 정자가 만났다는 사실뿐이라니요. 심지어 그 과정이 어땠는지조차도 우리는 알 수가 없어요. 안타깝게도 나는 엄마와 아빠 둘 다 없으므로 물어볼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태어나자 마자 버림받았다는 사실로 짐작해보건데, 보통 사람들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섹스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만약 그랬다면 나를 존재하지도 않았던 양 취급하진 못했겠지요.
 아무튼, 나는 그렇게 처음부터 제 존재를 부정당했어요. 스스로를 불쌍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아무튼 그런 제 이력때문에 제 사고방식이나 태도에서 다른 ‘착한’ 친구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물론 변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마당에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왜 그렇게 살았는지가 중요하겠습니까. 아무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놈으로 취급받은 덕분에, 저는 어릴 적부터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곤 했습니다. 저를 키웠던 영아원 선생님들, 고아원 선생님들에게 제가 어떤 존재인지 계속해서 생각했지요. 나이를 좀 더 먹어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선생님들에게, 나를 둘러싼 아이들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고아인 나의 존재를 지워버리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저의 존재가 더 강렬하게 그들 사이에 자리잡게 되었단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왜냐면 저는 어찌 됐든 그 사람들 옆에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제가 주변에 없길 바랐지만, 그런다고 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거라 믿어요. 구름이 껴서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이, 저 미천한 고아새끼가 아무리 잘사는 놈들 틈에 끼어서 풀이 죽어 있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전 차라리 존재하지 않고 싶었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나한테 동정심을 보이면서 애써 친한 척 하는 놈들은 없어서 내 삶은 그럭저럭 살만한 편이었습니다. 저를 둘러싼 엄청나게 시끄러운 침묵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던 유일한 일은 바로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책 위에 활자로 적혀있으면 존재하는 것들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한때 존재했거나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모두 다 상상 속의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이녀석들을 가지고 어떤 장난을 치더라도 문제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활자가 되어서 잉크가 되어버리는 순간,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으니까요. 활자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다 모아가지고 하나로 뭉개는 능력. 아무튼 책만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 수학도 좋아하게 됐고, 과학도 좋아하게 됐고, 이것저것 다 좋아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공부는 꽤 잘하게 됐습니다. 나는 항상 교과서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어요. 자랑이라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에겐 제 존재가 부정당한 과거의 결과물로밖엔 여겨지지 않습니다.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제 존재로써 증명되는 것이 더 늘어나는 것 또한 아니었구요. 아무튼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저는 ‘고아’가 아니라, ‘공부 잘하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겠지요. 공부 잘하는 고아. 참 기특해라.
 공부를 잘 하면 그동안 받았던 대접과는 조금 다른 대접을 받게 됩니다. 선생님들에게 유달리 많은 관심을 받는다던가 하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사고만 안 치면 별 신경도 쓰지 않던 작자들이 어느 날부터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꼴이 얼마나 우습던지요. 괜히 교무실에 불러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요즘 어떻게 지내니, 하는 거죠. 가소롭습니다. 그럴 때면 당신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기 전까진 행복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사회성 없는 저도 그런 말은 쉽게 내뱉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그렇게 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활자로 기록했지요. 그 새끼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새끼한테 이렇게 대답했다. 얼굴이 벌게지더라, 그때 저렇게 말했더니 갑자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더라, 하는 극적인 상상들. 존재성의 가벼움은 활자가 갖는 진지함에 비해선 어찌나 초라하던지요. 그런 일들을 그때그때 기록해서 마치 진짜인 것 마냥 진실들 사이에 적어두면, 몇 개월 뒤엔 실제로 이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헷갈렸습니다. 그럴 때면 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내 생물학적 부모에게 복사해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아마 그들도 나를 부정하던 일을 그만두고선 나라는 존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그만큼 제가 기록한 제 삶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삶에서 내 존재를 지워버린 이후부터 계속해서 나의 존재에 시달려왔을 테니까요. 내 존재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나를 잊을 수 있겠지요. ‘자식된’ 도리라는게 있는 것이라면, 내가 사라지는 것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일 것입니다. 있었는지, 없었는지, 헷갈리게 되는 것. ‘내가 언제 섹스를 해서 낳은 자식새끼를 영아원에다가 던져두고 간 적이 있었나?’ 아, 우스워라. 그들이라면 정말로 이런 질문을 할 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내 존재는 그들에게 가볍고도 가증스러운 것일테니까요.
 아무튼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어떤가요? 물론 제 인생 얘기가 제가 본격적으로 말 할 내용과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당신이 지금 궁금해하는건 얼마 전 자살한 여자 아이가 나에게 남긴 말이 무엇이냐는 것이겠지요. 유서에 ‘제 유언은 정욱이에게 다 얘기해뒀습니다.’라고 적어두고 죽었으니까요. 성연이 또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했지만, 나와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일 테지요. 이를 테면 그녀 자신의 존재 자체가 갖는 가치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했을 것이고, 아마 그 과정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는 의미 없다고 여겼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성연이는 ‘니가 마음껏 상상해 봐’라고 말했습니다. 웃으면서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은 진실일수도, 순전히 저의 상상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 매우 정확하게, 매우 뚜렷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당신에게 정확히 말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나는 잃을 것이 없으니까요. 제가 갖고 있는 것은 제 존재밖엔 없고, 그것은 당신이 쉬이 뺏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러니 난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소년원에 가게 될까요, 아니면 어떤 벌을 받게 될까요. 그게 당신에게 중요한가요? 내 존재는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고, 당신 또한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연은 내 여자친구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평소엔 그냥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주말이면 섹스를 하는 사이었습니다. 요즘엔 저처럼 어린것들도 섹스를 하니까 너무 놀라진 마세요. 시대가 변했잖아요?
 성연을 처음 마주친 것은 우리 동네에 있는 한 상가의 계단에서였습니다. 저는 담배를 피고 있었고, 성연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반대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워낙 제정신이 아니었던 때라서요. 그러고보니 성연이 죽은 이후론 담배도 끊게 됐네요. 제가 그 상가의 계단에서 담배를 피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 빌딩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는 형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증도 아직 없었던 저는 그 형에게서 받은 담배를 피곤 했습니다. 그 형은 저랑 같은 고아원 출신입니다. 부모 두 명이 죽어서 유산을 꽤나 많이 받았더라구요. 살면서 돈 관리라곤 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니, 돈 쓸 데라고는 저같은 애들한테 담배나 한 갑씩 사주는 거였습니다. 하여튼 그 상가 건물에서 담배를 받으면, 저는 비상계단으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선, 마치 높은 산에 가서 맑은 공기를 들이키듯이 담배연기를 들이키곤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수많은 생각들이 구름 걷히듯 사라지곤 했어요. 비상계단엔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고,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 같은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우기엔 딱 적당한 장소인 셈이죠.
 그 날은 평소보다 늦게 그곳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성연을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계단 일 층에 서서 담배를 피는데 성연을 마주친 거였죠. 어떻게 첫 대화를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그녀에게도 담배 한 대를 건넸고, 그녀가 켁켁거리면서도 담배연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애쓰던 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성연은 매일 저녁 그곳에 있는 독서실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 못 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수준.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한 위치 있잖아요. 학원에, 독서실에 하루종일 시달리고선 마치 제가 담배연기를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듯이, 하루를 울음을 터트리는 걸로 마무리하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억지로 우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냥 울음이 나올 때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었죠. 그녀가 울음을 참기 위해 공부를 하던 것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왜 울음을 참는지 알게 된 것은 훨씬 더 나중의 일이었지요. 어쩌면 저도 담배를 피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고행 이후에 들이키는 담배연기는 나에게 내리는 칭찬같은 것이기도 했으니까요.
 아무튼 첫 만남에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그냥 헤어졌습니다.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녀는 도망치듯 담배 한 대를 다 소화해내고선 붙잡아달라는듯 저에게서 천천히 멀어졌습니다. 저는 사람이 뒤돌아보지 않고도 뒤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깨달았습니다. 멀어지던 그 순간 난 분명 그녀와 눈을 마주쳤으니까요. 저는 그날 이후 매일 비상계단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바라본 그녀의 작은 얼굴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그녀는 모든게 작았습니다. 키도 작고, 손도 작고, 눈, 귀, 입, 코, 입술, 가슴 모두 다 작았습니다. 작은 것들끼리 모여있으니 제겐 한없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완벽한 존재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라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큰 법입니다. 너무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너무 커다란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듯이요. 나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예술에 관한 많은 글과 그림들을 보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미학 이론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만큼은 아름다움의 원형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 눈에도 제가 아름답게 보였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녀는 가끔 두려운 눈빛으로 날 보았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해도 아무렴 좋았습니다. 그저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으니까요. 나는 때로 그녀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많이 바라보기 위해 그녀의 담뱃불을 붙여줄 때 일부러 라이터를 천천히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앙다문 입술에 붙잡혀있는 담배에 불이 가까이 가면 갈 수록, 그녀의 얼굴에 진 담배의 그림자도 점점 더 커지곤 했습니다. 나는 그게 참 안타까웠지만, 한 번도 안타깝다고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림자가 없는 곳이 더 밝아지는 사실만으로도 제겐 벅차는 행복이었습니다.
 우리가 두 번째 만났던 날, 저는 그녀에게 또 다시 담배를 건네고선 담배가 맛있더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고 슬며시 웃기만 했습니다. 그녀가 담배연기를 조심스레 내뱉자 저는 그걸 들이켰고, 그 때 그녀의 로션 냄새가 제 코를 같이 간질였습니다. 제가 지금 담배를 끊게 된 이유는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더 이상 제 담배에선 그녀의 로션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내 이름이 김정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녀의 눈길은 제 교복 명찰에 가 있었습니다. 저는 멋쩍게 웃고서 그녀의 가슴에 적힌 이름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박성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두어 번 더 만나고 나서부턴,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 항상 쓸데없는 말을 해서 그녀가 말할 타이밍을 자주 뺏곤 했습니다. 대화를 많이 해봤어야지요. 아무리 많은 말이 적혀있더라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볼 수 있는 활자의 세계와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순간 공기중으로 그 내용이 흩어져버리는 대화의 세계는 참 달랐습니다. 휘발성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지만 그녀는 참을성 있게 제 말을 다 들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처음으로 남에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한 이야기는 위에서 제가 한 이야기와 비슷하지만, 좀 더 자세했습니다. 제 이야기엔 맥락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때 학교 선생님에게 애미애비도 없는 새끼라는 욕을 들었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가, 갑자기 전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가, 10살 때 고아원에서 밤마다 비타민이라면서 나눠주던 약이 사실은 수면제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러 온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라던가, 우리에게 보내던 경멸의 눈빛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죠. 사실 그 눈빛은 그냥 보통 사람의 눈빛이었다는 것도요. 지금 당신이 이 시간 이후 내게 보낼 눈빛 말입니다.
 아무튼 제가 그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모두 끝마친 날, 그녀는 나에게 다른 말을 건네는 대신 담배를 크게 한 모금 들이키고선 제게 입을 맞췄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누군가가 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준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숨을 내뱉을 때 제가 숨을 들이쉰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나 봅니다. 담배연기는 그녀의 작은 혀를 타고 들어와 제 허파를 가득 채웠고, 저는 그만 어지러워서 그녀를 꽉 껴안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그녀의 작은 품에 안겨 참 많이도 울었지요. 한참을 울고 나니 그녀의 가슴은 제 눈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미안하다고 얘기하니 그녀는 한 번 더 입을 맞춰주었습니다. 성연은 그날 이후로 어미새가 새끼들에게 밥을 먹이듯 제게 담배연기를 불어넣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죠.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기에선 그녀의 죽음에 관해서만 말할 수 밖에 없는게 아쉽습니다. 당신도 재밌게 여길 이야기들이 많은데 말입니다.
 
 그녀는 저와는 반대로 정신이 제대로 박힌 멀쩡한 엄마와 아빠가 만나 섹스를 해서 태어난 것으로 믿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줄 모르는데, 그녀는 그걸 알고 있는듯 했습니다.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은 그것의 없어짐으로 인해 깨닫게 되듯이, 그녀 또한 엄마가 죽었거든요. 암으로 죽었나, 사고로 죽었나, 기억은 나질 않네요. 아니면 어차피 암으로 죽을 예정이었는데 사고로 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어차피 죽을 예정이긴 하니, 여기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죽는다는 것이 하나의 대단한 사건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누가 죽었대, 그 인간이 뭐로 어떻게 죽었대, 하면서요. 그런 발언엔 일종의 동정과 쾌감이 함께 섞여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죽음은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그러하듯이, 그냥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길고 가느다란 실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실이라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 다른 실과 잘못 만나버리면 꼬여버리고, 엉켜버리고, 도저히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잘 죽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죽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못했다간 엉켜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죽을 때까지 풀 수 없는 실뭉치를 만들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연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연은 가족이란 것이 매우 복잡한 역할놀이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현상에 대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당위에 가까운 선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의 일입니다. 예컨대 어머니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자식새끼들은 자식들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는 순간 균열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참 묘한 일 아닙니까? 성연의 어머니는 정말로 ‘어머니’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기 이전에 어머니인 사람, 이것은 성연의 표현이니 내 표현대로 하자면 ‘존재가 소멸되어버린 존재’ 쯤이 되겠네요. 나는 그녀에 대해선 잘 아는 바가 없으므로 자세히 적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직후에 그녀의 남편이 곧바로 새로운 아내를 맞아들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성연의 어머니는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너무나도 잘 수행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자판기가 되어 남편과 자식새끼들을 먹여살렸고, 밤에는 남편의 욕구 해소 도구가 되었으며, 낮에는 착한 학습지 선생이 되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 마다 자신의 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그녀의 남편은 훈장처럼 그녀를 이런 저런 중요한 자리에 데려갔고, 그녀는 그럴 때마다 화장을 하며 웃는 얼굴을 연습했습니다. 그런 중요한 날이면 남편은 항상 취해서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고, 성연은 안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어야만 했습니다. 너무 늙어 볼품없는 사람이 되기 전에 죽은 것은 그녀의 삶에 비추어 보았을 때엔 행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성연은 슬프지는 않았지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고 표현했습니다. 성연의 어머니가 사랑을 흉내냈듯이요. 나는 엄마나 아빠 되는 사람이 죽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짐작이 잘 가지 않습니다. 성연은 가끔 꿈에서 어머니의 시체 앞에 서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장의사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은 모습으로 성연 앞에 누워있고, 그러면 성연은 그녀를 덮고 있는 얇은 천을 걷어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어루만진다고. 그러다가 잠에서 깨면 자신은 엉엉 울고 있더라고. 그러나 나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상상만 할 뿐입니다.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의 흥미를 이끌었던 것은 고장난 컴퓨터마냥 완전히 꺼져버린 생명이 어떻게 그것이 살아있을 때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지였습니다. 그것은 부패하지도 않고서 계속해서 죽어있는 상태로 성연의 정신 속에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성연이 제 정신 속에 살아있으니, 역시 생명이란 것은 죽은 뒤에도 계속되는 모양입니다. 존재라는 것이 별 것 있겠습니까. 한 번 인식되고 나면 아무리 인식하지 않으려 애써도 끊임없이 인식할 것을 강요하는 놈들이 바로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너를 위해서야. 나는 이 문장이 가지고 있는 명백한 모순을 너무나도 많이 겪어왔습니다. 특히 밤마다 나에게 수면제를 먹이던 고아원 선생이 그랬죠. 그래서 성연의 아버지가 아내가 죽은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재혼을 하면서 성연에게 이 문장을 내뱉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성연은 자신의 생물학적 어머니에게서 받은 친절을 그녀의 새어머니에게서 똑같이 받으면서 평범하게 자랄 뻔 했습니다. 어머니라는 것은 핏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문제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핸드폰에 남긴 메모들 때문에 생겼습니다.
 나는 그 메모를 직접 읽어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연이는 나에게 별의 별 것들을 다 보여줬었네요. 어쩌면 그 때부터 성연은 죽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연은 생각이 깊은 아이니까요. 아무튼 메모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성연의 아버지가 결혼 전 성연의 어머니를 강간했고, 가난했던 어머니의 부모는 거액의 합의금을 받고, 어머니는 자신이 겪은 일이 없던 일이 될 것 처럼 성연의 아버지와 결혼했다는 겁니다. 아, 이제 결혼했으니 강간이 아니네. 하고 스스로를 속였겠지요. 그리고 평생을 고통 받다 죽었겠지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하려고 애쓰니까요. 메모장 앱에는 날짜순으로 적혀 있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 그것이 기록된 날짜순으로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 성연이 내 두서없는 말을 참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이미 그녀는 그 연습을 활자를 통해 끝내둔 상태였던 겁니다. 아까 인생을 실에 비유한 것을 다시 끌어다 쓰자면, 선이라는 것은 무한개의 점들이 모여있는 것일 뿐이지, 어느 점이 먼저 찍혔는지는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메모가 메모 자체로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생성된 날짜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조차도 내가 쓴 글을 통해 나를 속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서 보여주면서, 이런 게 수십 권 있다고, 그리고 글자로 적혀있는 것이 모두 다 진실인 것은 아니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녀는 라이터 불빛에 제가 쓴 글들을 몇 장 읽어보면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분노인지 모를 표정을 짓더니 또다시 제게 입을 맞췄습니다. 이번엔 그녀가 내 품에서 울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처음으로 섹스를 한 날입니다. 성연은 내가 건넨 수첩이 위로인지, 저주인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먼지가 잔뜩 쌓인 비상계단 바닥에서, 우리는 잘 보이지도 않는 서로의 성기를 찾아 손을 이리저리 휘적였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다른 누군가 지켜봤다면 아마 섹스가 아닌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날 이후로 편의점 형에게 담배를 받을 때면 콘돔도 같이 사곤 했습니다. 나 같은 놈이 세상에 또 하나 태어나는 일은 막고 싶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의 행위예술은 점점 섹스의 모습을 갖춰갔습니다.
 
 내 메모들을 보여준 뒤 며칠이 지나고서, 그녀는 나에게 노력하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어쨌든 너는 거짓을 적는 방법을 알잖아, 하면서요. 나는 그 순간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를 깨닫고선 섬뜩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진실과 거짓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또 그것이 삶을 어떻게 갉아먹는 것인지 성연은 아직 몰랐던 겁니다.
 이쯤에서 다시 내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야겠네요. 그래요, 나 또한 내 뿌리라는 것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맨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남들한테는 엄마, 아빠가 다 있는데 나한테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나서 그것에 대해 고아원 선생에게 물어보았고, 그때 내게 돌아온 대답은 ‘엄마, 아빠라는건 꼭 있을 필요가 없는 거야.’였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 문장을 들은 나는 내 인생의 무언가가 처음부터 완전히 꼬여버렸다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있을 필요가 없는데 왜 남들에겐 다 있는가, 그게 제가 삶에서 처음으로 주의 깊게 탐구했던 질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고아원 선생에게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고, 마침내 내게도 엄마와 아빠가 있다는 확답을 얻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끝내 알려주지 않았지요. 머리가 좀 더 큰 이후엔 선생님들 몰래 미친듯이 서류철을 뒤지기 시작했고, 내겐 부모의 이름자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야 그 짓을 멈췄습니다. 그 사실 앞에서 몇 날을 울었는지 모릅니다. 우는 것이 슬슬 질릴 즈음 저는 제 서류에 부모의 이름자가 있든 없었든 간에 같은 양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나와 내 부모 사이의 관계는 십수 년 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버려진 순간 정의가 끝났던 것이니까요.
 사실에도 가치를 메길 수 있는 것일까요? 내 부모의 이름자가 서류철에 없다는 사실보단 그 부모가 나를 버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듯이, 한 인간의 인생을 이루는 수많은 순간들의 경중을 메길 수 있는 것일까요?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의 가치를 메기는 순간 사실은 사실이 아니게 되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성연의 어머니가 겪은 일들은 이미 진실과 거짓 너머에 있는 무언가와 깊게 관계 맺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매 순간을 기록하며 살아왔듯이, 그녀 또한 그녀 자신의 삶을 견뎌내기 위해 그녀 안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짓뭉개며 메모들을 적었을 테니까요.
 너는 이 메모를 그냥 메모로만 봐야 해. 뭐가 진짜인지 알 수도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돼. 그건 네 어머니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는 거야.
 안타깝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런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성연은 내 간절한 문장에 퉁명스런 문장으로 응수하곤 했죠.
 그럼 넌 네 인생 전체가 거짓말로 얼룩져도 아무렇지 않은거야?
 아, 성연은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그녀를 길러냈다는 것을 정말로 몰랐던 걸까요. 이제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성연에게도 진실이나 거짓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메모의 내용이 진실이 아닐 가능성을 제시한 순간부터, 그것들은 이미 송두리째 부정해야 할 대상들이 되었을테니까요.
 나는 이미 네 생물학적 아버지가 생물학적 어머니를 강간한 순간 모든 것은 끝났던 것이라고, 그때부터 너의 가족이란 것은 글러먹었던 것이라고, 그래서 네가 이제 와서 나를 통해 진실이 뭔지, 거짓이 뭔지 알아내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네 어머니는 이미 한참 전부터 죽은 채로 살아있던 거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사이에 미묘한 눈치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내가 내 메모의 진실과 거짓을 아주 구별하지 못할 것은 없었어요. 몇몇 사건들은 내 인생에서 아주 큰 사건들로 기억되어 있고, 대부분의 거짓된 기록들은 매우 과장된 어투로 적혀있기 마련이었으니까요. 그런 것들을 토대로 시간을 재구성하고, 사건들 사이의 논리적인 관계를 정리해 보면 헷갈리는 기록들의 진실됨도 어느정도는 알 수 있겠지요. 물론 완전하진 않겠지만요. 내가 그 짓을 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진실과 거짓이 함부로 구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 삶을 위해서요. 성연도 내가 일부러 그 작업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게 자꾸만 무언가 해 보라고 재촉하지 않았겠지요. 응? 이건? 이것도 기억 안나? 이건 얼마 전이잖아? 진짜로 이런 일이 있었어? 몰라? 에이, 알잖아. 성연은 밤마다 나에게 애무를 해 주면서 내게 진실을 토해낼 것을 요구했습니다.
 아까 성연이 꾸던 꿈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나는 요새 매일 밤 그 순간에 관한 꿈을 꿉니다. 그녀의 머리칼, 그녀의 향기, 모든 것이 그때와 같지만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그녀가 시체가 되어 바스라져버린다는 것이 다르지요. 그 장면이 얼마나 끔찍한지 당신은 쉬이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 가장 추해지는 법이니까요. 그건 살아생전 받았던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가겠다는 듯한 몸부림입니다. 나는 땀을 흘립니다. 온 몸이 땀에 젖어 깨면 나는 다시 그 흉측한 몰골을 보지 않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샙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하루를 견뎌내고 나에게 상을 주듯이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는다는 사실을 당신은 이해하시는지.
 아, 인간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요. 나는 그녀가 나를 언젠가 이해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생존의 문제 앞에서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리곤 하는 법입니다.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나를 통해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내게 진실을 갈구하면 갈구할 수록 내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거짓으로 버텨온 사람이므로.
 난 내가 잘 하는 것을 하기로 했습니다. 거짓 위에 거짓을 쌓아가는 짓이죠. 성연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한 대답이지, 진실이나 거짓 그 자체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럴듯한 설명을 붙이고, 이것 봐, 이건 좀 가짜같지 않아? 이건 진짜같지 않아? 하면서 그녀를 납득시키면 이 고통이 끝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면 경전을 제 꼴리는 대로 해석해놓고 평생을 자위해대는 광신도마냥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고 믿었던 거죠.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까. 그러나 이 생각을 한 것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저질렀던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그녀는 나와는 달리 아빠가 있었으니까요. 광신도가 광신도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신이나 그 똘마니 되는 놈들이 그의 앞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연의 어머니는 그러니 죽기 전에 자신의 남편을 먼저 죽였어야 했습니다.
 매일 집에 갈 때마다 내 부모가 내 앞에 앉아있으면 어떤 느낌일까요. 그들이 내게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내가 모를거라고 철석같이 믿으면서요. 상상만 해도 역겹지 않나요. 아, 당신은 이해 못하시려나.
 아마 성연이 느낀 기분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강간했던 아버지.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성연 자신. 아버지가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 때마다 성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사랑을 받아야만 했을 겁니다. 덜덜 떨면서 웃고, 눈물을 삼키면서 사랑한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딸에게 그랬듯이.
 그러니 애초에 난 성연에게 내가 살면서 남긴 기록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도 안됐고, 상상으로 만들어낸 메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어서도 안 됐고, 그녀의 헛된 희망대로, 그리고 나의 편협한 이기심대로, 그 수많은 메모들이, 사실은 책을 좋아했던 그녀의 어머니가 써내려 간 한 편의 긴 소설일지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도 해선 안됐습니다. 성연은 그 모든 거짓말을 진심을 다해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거짓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아버지에게 진실을 물어볼 준비도 되어 있었으니까.
 며칠째 만나지 못했던 성연이 어느 날은 나보다 먼저 비상계단에 와서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나를 보더니 나한테 어머니의 핸드폰을 줬어요. 아버지가 울면서 무릎을 꿇더래요. 그냥 합의 보고 끝날 뻔 했는데 네가 태어났다, 미안하다, 하면서요. 대체 뭐가 미안한지? 거기다가 널 사랑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대요. 참 뻔뻔한 사람 같아요. 그렇죠? 그렇게 사랑하면 성연이가 나한테 오기 전에 자살했어야지. 나는 성연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 줄 만큼 그녀를 사랑했는데. 가만 보면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쉽게 내뱉는 것 같다니까요.
 혹시 그 애 아버지가 나 보러 온다는 말은 없던가요? 보러 올 용기는 있으려나. 만나면 이 말을 꼭 해줄텐데.
 
 내가 당신 딸을 강간하고 죽였어요.

 아, 통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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