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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능동적으로 구축한 수동적인 방식의 능동적 삶

by 고우 202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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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가끔 가다 누군가에게 나의 삶을 설명할 때면 가파른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지듯 살아간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 비유가 담고 있는 상황은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내가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일들이 날 스쳐지나가고, 나는 어찌 저찌 삶을 유지해나가고 있지만 힘들다. 여기저기 부딪혀 뼈가 부러지고 피가 흐르는데, 내가 이 산의 가장 깊숙한 골짜기에 이르기 전까지 이 비탈길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물론 이런 비유는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최근 몇 년 간의 내 삶을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비유 중 하나일 것이다. 사명감을 갖고 영혼을 갈아넣었던 사업은 말아먹었고, 거기에 불을 지피던 ‘나는 특별한 존재여야 한다’는 (사업가의 기초적인 자질인) 허영심은 이제 좀 더 철이 들면서 사그라들고 말았다. 사업을 정리한 뒤에도 방향감을 상실한 채 이 일 저 일 해보다가 제대로 끝을 보지 못했다.

그 시절에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일을 벌리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삶의 균형을 더 이상 잃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어떤 일에도 몰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학교 생활은 돌이켜보면 좋은 안식처였다. 어쨌든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은 좋은 일이었고, 삶을 강제적으로 알차게 해주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그렇게 살다 보니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지는 자아상이 마음 속에서 조금씩 피어올랐다.

 

1.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내가 의욕을 느끼고, 잘 하고 싶어하고, 보람을 느끼고, 모두를 위한다는 미명 하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일. 그러면서도 내가 죽은 다음에 내가 일궈둔 모든 것들이 그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 일. 살면서 그런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아무데나 붙여 주는 곳이면 가겠다는 사람들이나, 돈 많이 벌 수 있는 곳을 찾겠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삶은 소수에게 허락된 특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느 때부터 스멀스멀 들고 있었고, 어느 순간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걸 받아들일 만큼 늙어버리지는 않았다.

 

2.

출처: Netflix <내 몸이 사라졌다> (2019)

 

- 운명을 믿어요? 진짜로요.
- 인생은 다 정해져있고 우린 그냥 따라갈 뿐이라고요?
- 그래요.
- 아무것도 못 바꾸고요?
-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죠. 우리가… 아예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모를까. 확실히 마법을 걸 방법은 그것뿐이에요.
- 그게 뭔데요?
- 그러니까… 왜 있잖아요. 걸을 때… 여기로 오는 척 하며 농구할 때 속이는 동작처럼 딴 길로 새서… 저 크레인으로 점프하는 거에요. 하면 안되는… 뭔가 즉흥적인 일. 금지된 행동을 하는 거죠. 덕분에 다른 세상에 가서 잘됐다며, 후회도 안 해요. 그런 거요.
- 그러고요? 드리블로 운명을 피한 다음엔 어떻게 해요?
- 그때요? 계속 피하는 거죠. 냅다 뛰는 거에요. 행운을 빌면서요.

영화 <내 몸이 사라졌다> (2019) 중

 

3. 

사업을 하면서 늘었던 것은 아가리 터는 능력이다. 그것은 사업가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덕목이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대표가 본인 전재산을 털고 대출까지 땡겨서 ‘그렇게나 자신 있는 사업’을 온전히 본인 자본 100%를 집어넣는게 아니라, 사라져도 되는 남의 돈을 얻어내려 설득하는 데에 있다. 그 간극의 오묘함이 느껴지는가? 5년, 7년의 기간동안 J자형 성장을 해서 상장을 하든 인수합병이 되든 아무튼 사업이 큰 돈을 벌 것은 확실하다고 남을 설득할 수 있어야한다. 그렇게 확신하면서 왜 네 돈은 안넣는데?  물론 이건 스타트업신을 아주 나쁘게 표현한 것이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10명 중 9명의 창업가들은 진실과 현실, 그들이 제시하는 청사진과 그들 스스로가 마음 속 깊이 이미 알고있는 진실 사이의 괴리를 허영심으로 채워내고 있었다. 혁신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예쁜 그림’에 몰두하게 된다. 나도 돌이켜보면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사업을 그만 두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의 나와 내 팀은 우리가 그리는 그림을 함께 그려나가기엔 역량이 부족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몇 개월 간 시간을 끌었다.

알맹이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쌓아왔던 능력은 조금의 웹 개발 능력과 달변가적 기질뿐이었다. 누군가는 매우 부러워 할 능력이기는 하지만, 직업으로 삼을 만큼 그 일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더 실력을 쌓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짜쳤다'.

삶이 어딘가로 끊임없이 침잠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궤적에 큰 변화가 필요했지만,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알맹이가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빈 껍데기만 가득 찬 내 삶을 어떤 식으로 채울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과 현실의 내 삶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이 극에 달할 즈음, 전공 강의 중 <인구와 경제>라는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에서 나는 언어가 아닌 숫자로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인종차별, 성차별, 고령화사회, 저출생 등 온갖 ‘자칭 전문가’들이 달려드는 뜨거운 이슈들이 난무하는데, 교수님께서는 시종일관 차분한 태도로 그 문제를 통계적으로 어떻게 정치(精緻)하게 다룰 수 있을지를 논하셨다. 그 드라이한 태도는 내 삶엔 없던 무언가였고, 뭐가 됐든 통계 분석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 내 삶의 주어진 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샛길의 초입이었던 것 같다.

바로 다음 학기에 계량경제학 수업을 들었고, 때마침 교수님께서 아주 어렵게 가르치기로 소문난 분이셨다. 50%만 이해하자는 생각으로 계량경제학 교과서를 열심히 읽었고, 그러다 보니 70%정도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시험문제를 절반 가량 맞았는데  A+로 그 수업을 마무리했다.

 

4.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기획직군에서 그 ‘아가리 터는’ 관행을 좀 더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으로 변모시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나는 정보문화학을 이중전공하고 있는데, 그쪽 분야 수업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는 답답한 마음이었다. 특히 디자인이나 기획 관련 수업들에선 그런 현타를 너무 많이 겪었다. 어차피 아무 의미 없는 숫자 조각들을 사업계획서상 '이쁘게' 만들기 위해서 별 쌩쇼를 다 해야 한다. 

나는 흔히 그로스(Growth) 해킹이라고 불리는 개나소나 전문가라고 설쳐대서 대체 누가 진짜로 믿을만한 사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분야에, 데이터 사이언스를 좀 더 배워서 그런 쪽으로 내 전공과 기획자적 능력을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거라면 좀 더 알맹이가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분야로 나아가기 위해선 경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경력자를 원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으니, 나는 내 경험과 맞닿아있으면서도 전혀 동떨어지지 않은 중간지점을 찾아야 했다.

학교 대학원에서 방학동안 하는 데이터사이언스 워크샵이 있었다. 한 달 가량 대학원 랩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거나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창업 했던 이야기, 계량경제학 수업에서 했던 프로젝트 이야기 등을 버무려서 자소서를 잘 썼고 (나는 아가리는 잘 털고, 재료도 좋았다) 합격해서 참여 자격을 얻게 되었다. 애초에 비전공생들을 위한 워크샵인 것도 컸다.

오묘하게도, 나는 그 워크샵에서 NLP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결정의 배경엔 별게 없었다. 내가 하려고 했던 분야를 다루는 랩실이 생각보다 없었다. 또 사업할 때부터 NLP엔 좀 관심을 두고 있었던 만큼 배워서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합격한 이상 어느 랩실로 지원할지는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NLP 랩실 두 개를 1,2 지망으로 써서 제출했다. 그리고 좀 더 솔직히, 다가오는 운명을 피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랩실에 인턴까지도 지원하게 됐고, 그때 이후로 계속 AI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나는 목숨을 걸고 냅다 뛰지는 않았지만, 내 앞에 놓인 운명을 좀더 ‘확률적인 성격’의 것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다.

 

5.

연구를 하는 것은 상용 서비스의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는 것과는 그 결이 많이 다르다. 특히 나는 프론트 웹 개발을 해왔던만큼, 내가 어떤 코드를 수정하고 저장하면 곧바로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AI 연구를 하다보니 실행이 끝나기까지 짧게는 몇 십 분, 길게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는 코딩을 해야 했다. 쉽게 말해 효율적인, 그리고 오류의 가능성을 사전에 모두 차단하는 형태로 코딩을 해야 했는데, 성질 급한 나에겐 정신 수양에 가까운 것이었다.

연구 주제를 확정하는 과정에서도 내 연구만의 기여가 무엇일지 생각해야 했다. 어떤 분야의 기존 연구 성과가 있으면 이걸 무작정 받아들이지 말고, 여기에 내가 뭘 더 얹을 수 있을지, 기존 연구들이 보지 못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했다. 남이 해놓은 것을 어떻게 하면 소비자 친화적으로 잘 응용해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했던 과거의 일들과는 결이 달랐다. 진짜 아주아주아주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내가 하는 일에 알맹이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런 글을 쓴 계기도 얼마 전 내가 1저자로(!) 논문 하나를 학술지에 투고하고 잠깐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는데, 간단하게나마 지난 몇 년 간의 소회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6.

어떻게 하면 ‘도전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수 있을까? 최근 나는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지듯 살아가는 게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 자신을 하늘 높이 던져놓고, 그 수습은 추락하는 과정에서 어찌저찌 해 보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 내가 능동적으로 구축한 수동적인 방식의 능동적 삶이다. 이제 점점 내 자신의 열정만으로는 스스로 방향을 잡고 일을 벌리면서 살아가기가 힘드니까, 그리고 내 열정으로 뭔가 몰입해서 하면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차라리 반대로 세상이 나를 내버려두지 못하게 만들자는 마인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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