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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글(1) : 짧은 글쓰기 하루에 하나씩 학교에 가는 시간동안 짧은 분량의 글을 쓰는 것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내가 한 편의 글을 쓰는 데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소설가처럼 애초에 그것이 업인 사람들이야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같은 경우는 앞으로 쓰게 될 많은 글들이 어디까지나 도구적인 성격을 가지고 내 생각을 명확하게만 전달하면 끝인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에, 나처럼 한 편짜리 글을 쓰는 데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여 쓰는 놈은 나름의 '포기' 연습이 필요하다. 하루에 한 편씩, 학교에 가는 길에 주제 하나를 아무거나 골라서 그것에 관한 나의 생각들을 빠른 시간 안에 정리하는 연습을 해 보자. 생각의 속도를 높이는 데에도, 여러 작업의.. 2019. 4. 25.
[소설] 토니오 크뢰거 토니오 크뢰거의 이원적 세계관 “인간은 인간이 지닌 인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초견적으로는 상당히 오만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인간 인식의 한계’와 ‘한계 너머의 것’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인간인 이상,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며, 그 한계가 존재하는 이상 한계 너머의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마치 앞을 못 보는 어부가 너무 작아 자신의 그물망을 다 빠져나가버리는 물고기들을 관찰하려는 수준의 노력을 요한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상, 단 한 번도 인식해보려 하지 않았던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존재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우리가 가진 .. 2019. 4. 9.
[영화] 메멘토 사막을 건너는 법: 영화 『메멘토』가 그리는 극사실주의 인생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삶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던지면 결국에는 할 말을 잃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블루 (Le Grand Bleu, 1988)』에서 잠수부인 주인공 자크는 연인 조안나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가장 힘든 건 바다 맨 밑에 있을 때야.” “왜?“ “왜냐하면 다시 올라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하거든. 난 항상 그걸 찾는 게 너무 어려워.” 인간은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없고, 당연히 바다 밑바닥에서 올라오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기에, .. 2019. 4. 9.
이비인후 사람들이 물밀 듯 들어왔다, 각자 잰걸음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나방도 된다. 그저 어디를 향해 가는 모습이 나방이다. 그럼 나방은 사람일까? 그는 그가 앉은 자리가 안전한지 확인하려는 듯이 바닥을 주먹으로 탁, 탁, 하고 내리쳐 보더니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곳에 누웠다. 나는 나방은 아니다. 누에고치? 그것 치곤 그는 너무 더럽고 냄새났다. 그의 코는 이미 그의 냄새에 익숙해진지 오래다. 그래서 그는 가끔 그의 냄새가 그립다. 그리운 그의 냄새, 이젠 너무 익숙해 잊어버렸다. 그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면, 그 누군가는 어찌됐든 내색하든 안하든 약간의 눈살 찌푸림을 보였는데, 그는 아마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라고, 거의 구십오 퍼센트 정도 .. 2019. 4. 9.
메두사 그녀의 시체는 마치 그에게 시위라도 하듯이 방 한가운데에 당당히 놓여있었다. 형욱은 처음에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민서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서는 울부짖었다. 세 달 전의 일이었다.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올 용기를 갖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민서를 느꼈다. 작은 방이었지만 민서에게 필요한 것들은 꼭 알맞게 늘어서 있는 방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침대가 창가에 놓여 있었고, 그 침대의 머리맡 왼 편에는 화장대가 있었다. 반대편 벽에는 책꽂이가, 그 옆에는 책상이, 그리고 조금 널찍이 떨어진 곳엔 옷장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모양에 특별할 것도 없는 방법으로 들어선 가구들. 소담하다, 라는 말은 그녀의 방에 꼭 알맞은 표현이었다. 방 안에는 세 달 치의 먼지가 쌓여.. 2019. 4. 8.
[영화] 파수꾼 기억의 지층 : 영화 『파수꾼』에 드러난 장소성의 미학 밤이다. 저 멀리 도시의 희미한 불빛이 반짝이고 있지만, 주인공 동윤이 걸어가는 길은 어둡기만 하다. 그의 불안정한 심정을 위로라도 해주듯 저 멀리 서 있는 가로등은 주황색 빛을 한숨처럼 쏟아내며 거리를 밝히고 있고, 그 옆에는 세 개의 벤치가 길가를 따라 주저앉아 있다. 동윤은 화면을 등진 채 가로등 가장 가까운 벤치 위에 앉아 있는 한 남성의 실루엣에 천천히 다가간다. 이 장면은 윤성현 감독의 영화 『파수꾼』의 일부분으로, 한 중년 남성이 자신의 아들 기태가 자살한 이후 그의 죽음을 추적해 나가던 와중에 기태의 옛 친구인 동윤과 만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아주 친했던 세 친구(기태, 동윤, 희준) 사이의 관계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해 결.. 201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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