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시체는 마치 그에게 시위라도 하듯이 방 한가운데에 당당히 놓여있었다.
형욱은 처음에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민서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서는 울부짖었다.
세 달 전의 일이었다.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올 용기를 갖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민서를 느꼈다. 작은 방이었지만 민서에게 필요한 것들은 꼭 알맞게 늘어서 있는 방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침대가 창가에 놓여 있었고, 그 침대의 머리맡 왼 편에는 화장대가 있었다. 반대편 벽에는 책꽂이가, 그 옆에는 책상이, 그리고 조금 널찍이 떨어진 곳엔 옷장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모양에 특별할 것도 없는 방법으로 들어선 가구들. 소담하다, 라는 말은 그녀의 방에 꼭 알맞은 표현이었다.
방 안에는 세 달 치의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가 방 안에 걸어 들어오자 작은 바람이 일었고, 창문을 통해 쏟아진 햇살에 바람에 날린 먼지들이 비춰졌다. 그는 잠깐 창 밖에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자 붉은 태양빛이 그의 눈꺼풀을 두드렸다. 눈을 뜨면 언제나 그랬듯 그녀의 미소가 그를 반겨줄 것만 같았다.
그 날 이후, 그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민서는 그의 아내였다. 그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어야 하는 것이 옳았다.
그는 방 한가운데, 그녀가 누워있던 곳을 응시했다. 그 날 밤의 일을 떠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었다. 형욱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조심스레 그녀가 쓰러져 있었던 자리에 가 누워 보았다. 어지러웠다.
그는 그녀가 마지막 순간에 바라봤을 것들을 둘러보았다. 천장의 전등, 창문의 커튼, 책상과 책꽂이. 그는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그녀가 그냥 눈을 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 눈을 감았을까, 눈을 감기 전에는 무엇을 보았을까, 따위의 질문에 그는 답하지 못했다. 알기 어려웠다.
-왜 죽었던 것일까?
무릎을 꿇고 울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와는 달리 장인과 장모는 의외로 덤덤했다.
“괜찮네. 그래, 자네도 고생이 많았네.”
안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사위에게 전달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어째서 알지 못했느냐, 그 일이 있기 전에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따위의 질문들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입을 다무는 것으로 질문을 대신했다. 형욱에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였다. 아내의 죽음에 대해 그럴 듯한 변명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였다.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형욱은 언제 그들을 다시 볼 일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떠오르질 않았다.
회사 인트라넷에 부고가 올라왔다. 검은 넥타이를 맨 직장 동료들이 늦은 밤 그를 찾아와 비어있는 자리들을 채워주었다. 그는 별 고마움도 느끼지 않으면서 그저 와 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그들이라도 없었다면 장례식장은 지나치게 썰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고맙기도 했다. 동기 몇몇과는 술잔을 기울였다. 형욱은 그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민서의 회사 사람들은 그녀의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다. 형욱은 그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려 보기도 했다. 웃었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상 가능한 사람들이 방문했고,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형욱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늦은 새벽, 민혁의 갑작스런 방문은 의외의 일이었다.
민혁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5 년 전쯤에 연락이 끊긴 뒤로 둘은 서로를 찾지 않았다. 그저 그는 민혁이 정신과 의사 일을 하다가 큰 일을 한 번 겪었다는 사실만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때 그는 민혁에게 같잖은 위로를 건네기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그것이 그가 오랜 인연을 대하는 방법이었다.
“대강 정리 되면 언제 한 번 술이나 한 잔 하지.”
육개장 한 그릇을 대강 비우고서 그가 내뱉은 문장이었다. 민혁은 형욱에게 별다른 위로의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래. 와 줘서 고맙다. 너 근데 내 번호는 있냐?”
형욱은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민혁이 그의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건너건너 들었겠지, 하고 짐작했다. 그도 민혁의 소식을 건너건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째서 민혁이 자신을 찾아왔는지도 묻지 못했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이에게 찾아온 이유를 묻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바닥은 차가웠다.
둘은 맞벌이 부부였다. 민서는 아침 일찍 출근해 형욱보다 일찍 퇴근했고, 형욱은 민서보다 늦게 출근해서 그녀보다 늦게 퇴근했다. 그런 생활이 몇 년간 반복되었고, 자연스럽게 둘은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형욱은 서재로 쓰던 공간에 간이 침대를 펼쳐 놓고 잠들었고, 민서는 원래 그들이 함께 쓰던 침대를 계속 썼다. 서로를 위한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는 매일 아침의 따뜻한 쌀밥에서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요리 대신에 설거지를 맡기로 했다. 민서는 밥을 혼자 차려 먹고선 먼저 출근했다. 그러면 형욱은 한 시간쯤 뒤에 잠에서 깨어 전기밥솥에 남은 밥을 밥그릇에 옮겨 담고,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먹었다. 그렇게 그는 그의 매일 아침 식사에서 그녀의 손길을 느꼈다.
늦은 밤 퇴근하면, 민서의 방 안에서는 가끔 불빛이 새어나왔다. 그는 그 불빛을 들어오라는 손짓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 그는 조용히 노크를 하고선 문을 열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피곤한 눈빛으로 그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고, 그런 밤이면 그는 그녀를 껴안고 잠을 청했다.
민서는 곁에 누가 있으면 잠을 설치는 편이었다. 그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를 껴안고 있는 그녀의 숨결이 주는 행복은 다음날의 피곤함 따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게 만들었다.
형욱은 그녀가 떠난 날 밤을 생각해 보았다. 불빛이 새어 나왔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그녀는 형욱이 방 안의 불이 켜져 있을 때만 그녀의 방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닫을 수도 있었던 방문을 굳이 열어두었다. 불도 켜 두었다. 그가 퇴근해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를 발견해주기를 바랐던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민서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형욱은 다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를 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거울을 바라보며 억지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자신이 겉보기에는 괜찮다고 여겼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봤다.
장례식이 끝난 이후에도 그는 민혁에게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형욱은 ‘언제 한 번 보자’라는 말의 가벼움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민혁에 대한 궁금증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키워 나가는 중이었다. 몇 년 만에 찾아와서 얼굴 한 번 비추고선 다시 연락이 두절된 민혁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로하겠다는 마음에 찾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민혁에게도 자살은 민감한 주제였으니까. 민혁이 민서를 완전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연락이 끊기기 전, 동창들이 만나는 자리에 민서가 잠깐 합석한 일이 있었다. 결혼을 약속한 뒤에 민서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였다. 민혁은 그녀에게 자신이 정신과 의사라고 소개했다. 그 말에 옆자리에 앉은 녀석들은 ‘제수씨, 형욱이 때문에 미칠 것 같으면 얘 찾아가면 돼요!’ 따위의 농담들을 던지곤 했다.
형욱은 이제 와서 그 농담들이 그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민혁은 민서가 자살한 이유에 대해서 그보다 더 잘 알 수도, 하다못해 그가 납득할 만한 아무 이유라도 대강 만들어서 그의 속을 시원하게 해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민혁에게 환자의 자살은 어쩌면 익숙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요새 민혁이랑 통 연락이 안되네.”
형욱이 별 생각 없이 친구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아, 그 새끼.”
친구 녀석은 약간 주저하더니, 그가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를 형욱에게 들려주었다. 원래 그는 규모가 좀 있는 정신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환자 하나가 자살을 한 뒤로 민혁도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살을 해도 정도라는 게 있지, 그건 내가 볼 때는 환자라는 놈이 죽일 놈이야. 뭐, 이미 죽기는 죽었다만.”
자살 기도를 반복하다가 결국 강제로 입원하게 된 환자였다.
“그 놈 성격 너도 알잖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되게 우리 신경 많이 쓰고,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쭉 그랬잖아. 그런데 맨날 나 죽겠다고 하는 놈들 틈에서 지 정신 상태는 얼마나 정상이었겠냐고. 억지로 버틴 거지. 근데 이 나쁜 놈이, 그 놈 속도 모르고 치료 받으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척 연기를 했다는 거야. 그런데 민혁이가 퇴원하라고 하니까 바로 그 날에 병원 나가자마자 거기 앞 차도에 뛰어들었다데.”
이어지는 친구의 말이었다.
“그게 자기 잘못이겠냐고. 절대 아니지. 작정하고 속이는데 어떻게 안 속냐? 그런데도 자기가 퇴원하라고 허락한 환자가 그 날로 나가는 길에 보란듯이 병원 앞에서 자살을 해 버리니까, 너라면 안 미치겠냐? 그냥 멘탈이 박살난 거야. 그래서 거기 일은 그만두고, 먹고는 살아야 되니까 좀 한적한 데서 병원 하나 차리고 조용히 사는 거 같아.”
-괜히 연락해서 들쑤시지 마라, 친구 녀석의 당부였다.
그는 원래부터 연락할 생각이 없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형욱은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바라보았다.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그리스 신화에 관한 책이었다. 그는 그녀가 그런 책을 읽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날 밤, 민서는 그의 품에 안긴 채로 그에게 뜬금없이 메두사에 관해 물은 일이 있었다.
“메두사 알아?”
“메두사? 알지. 갑자기 왜?”
“그냥. 내가 어디서 메두사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거든. 그런데 읽다 보니까 걔가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이 전부 다 죽어버리잖아.”
“그랬으려나?”
“응.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까, 에이, 그럼 그냥 눈 먼 사람들이랑 살면 되지, 하는 생각도 들더라.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녀는 그 말을 하고서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같이 있는데도 외로워?”
“아마? 그럴 것 같아.”
“왜?”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욱은 민서가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피곤에 젖어있던 밤이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다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그제야 잠에 빠진 그의 귀에 대고 그에게 몇 마디 속삭였다. 그는 그 때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따듯한 숨결의 감각만이 어렴풋이 그의 얼굴에, 그의 귓가에 되살아 날 뿐이었다.
형욱은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걸터앉아 책을 펼쳤다. 작은 종이 하나가 페이지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민혁의 명함이었다.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차들은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민혁의 병원은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토요일 저녁 어때?”
형욱이 그에게 전화를 걸자, 민혁이 그에게 물었다.
“네가 여기로 올래? 아니면 내가 서울로 갈까?”
형욱은 자신이 가겠노라고 답했다. 장례식장까지 찾아왔던 그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다.
민혁은 형욱에게 어떻게 그의 연락처를 알아냈느냐 묻지 않았다. 형욱은 굳이 그 명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들을 요량이었다.
해는 이미 저물었지만, 아직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어느 주말 저녁에 민서와 외식을 하러 나갔던 일을 생각했다. 그 때의 하늘도 꼭 지금과 같았다.
“요새 회사 일은 어때?”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민서가 항상 하던 질문이었다. 둘 사이에 할 만한 대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맞벌이 부부로 몇 년을 지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뭐, 늘 똑같지.”
“그렇구나.”
“왜?”
“그냥, 요새 네가 통 어떤지 얘기를 안해주잖아.”
“아, 그렇지. 워낙 바쁘니까.”
그는 괜히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 민서도 따라 웃었다. 민서의 웃음은 참 예뻤다.
“너도 뭐 요새 별일 없지?”
“응. 회사 일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그러면 그는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그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민서는 그런 그의 눈빛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 웃음은 형욱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지만, 둘이 결혼하기 전, 한창 연애할 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곤 했다.
민혁의 병원은 그리 크지 않았다. 형욱은 주위를 둘러봤다. 병원은 형욱이 상상하던 정신과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어딘가 차가운 인상을 풍길 것만 같았지만 연두색 배경의 인테리어와 흰 소파, 진료실, 카운터는 그가 감기에 걸릴 때마다 찾아갔던 동네 병원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더 따뜻한 분위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한쪽 벽에 적혀 있는 민혁의 경력을 읽어 보았다. 그의 환자가 자살했던 병원에서의 경력은 역시나 빠져 있었다. 그는 반대쪽 벽에 걸려 있는 해바라기 그림을 바라봤다.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민혁의 손에는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그는 별다른 무늬가 없는 얇은 회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병원 안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있지 않은 의사를 보는 것은 사뭇 흥미로운 일이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문을 좀 일찍 닫기는 하는데, 내가 여기 건물 옥탑방에 살고 있거든.”
“아, 그래?”
“어. 괜히 멀리서 출퇴근 하면 번거롭잖아. 나쁘지 않더라고. 혼자 살잖아. 여름에는 좀 많이 덥기는 한데, 뭐, 어차피 낮 동안 병원에 있고, 정 더우면 에어컨도 있으니깐. 내가 밥도 다 밖에서 먹으니까 집에서 하는 일이 씻고 자는 일밖에 없더라고.”
형욱은 민혁을 빤히 바라봤다. 민혁은 멋쩍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너는 어떻게 지냈어?” 민혁이 물었다.
“나야 뭐. 늘 지내던 대로 지냈지. 회사 다니고, 돈 벌고, 쓰지는 못하고, 항상 피곤하고. 직장 다니는 놈들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다들 비슷비슷하게 사는 것 같네.”
“그렇지 뭐.”
형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막이 흘렀다. 천장의 환풍기 소리만이 조용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둘은 종이컵 안에 담긴 믹스커피를 바라봤다. 다시 입을 연 것은 형욱이었다.
“그때, 와 줘서 고맙다.”
민혁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니 뭐, 고마워할 것까지야.”
형욱은 순간 그의 안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형욱은 애써 그 감정을 억누르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 마실래? 내가 살게.”
명함이 꽂혀 있던 페이지는 메두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그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주에 걸려 흉측한 괴물이 되어버린 메두사와, 청동 거울과 칼을 들고 그녀의 목을 베어버린 페르세우스의 이야기였다. 그는 민서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책을 뒤져보았지만, 어디를 찾아 봐도 눈이 먼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온전히 그녀 자신의 이야기였다.
술집은 조용했다. 직원은 그들이 들어온 것을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형욱은 직원을 불러 소주 한 병과 안주 하나를 주문했다.
직원이 메뉴판을 가지고 물러나자, 형욱은 물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민혁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요새 병원 일은 좀 어때? 할 만 해?”
형욱의 질문에 민혁은 허허, 하고 웃었다. 그는 학창시절에도 그렇게 웃곤 했다.
“뭐 힘든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고. 다른 개인병원들이랑 똑같아. 먹고 살만은 해. 정신병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없어 보여도, 의외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 거기다가 사람들이 정신과에서는 웬만하면 보험 처리를 안 하려고 하잖아. 기록 안 남기려고. 덕분에 나랑 간호사들 몇 명 먹여 살리기에는 충분히 벌고 있어.”
“다행이네.”
“그렇지.”
직원이 술을 가져오고, 형욱은 민혁의 잔을 채웠다. 민혁은 형욱의 오른손에 들린 술병을 건네 받고 형욱의 잔을 채웠다.
둘은 조용히 술잔을 비웠다.
“그래도 고생하네. 매일 환자들 보려면 힘들 텐데.”
형욱의 말에 민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예과 2학년 때인가, 정신과 간 선배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직원이 안주를 내어 왔다. 형욱은 직원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조용히 인사한 뒤 민혁의 눈을 바라봤다. 무미건조한 눈이었다.
“무슨 얘긴데?”
“수업을 들으면, 항상 환자에게 공감해라, 경청해라, 존중해라, 그 지랄을 하거든. 특히 정신과 수업은 그래. 물론 본과 들어가면 그냥 전문용어 외우는 일이 더 많긴 하지만. 그런데 정신과 선배들이 하는 말이, 수업에서 배운 그대로 하면 사람이 미쳐버린다고 하더라. 치료할 환자가 한 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을 신경 쓰다 보면 의사의 정신에도 한계가 찾아온다는 거지.”
그는 빈 술잔에 술을 채우고 한 번에 비웠다. 형욱도 그를 따라 술을 마셨다.
“오랫동안 정신과 일을 하려면 환자에게 웬만하면 주의를 기울이면 안 된다는 거야.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는 건 좀 이상하고, 뭐랄까, 공감하지 말라는 거지. 대강 공감하는 척 하면서 속 이야기는 웬만하면 흘려 듣고, 그렇게 하라는 거지. 의사가 심리 상담사는 아니라는거야. 걔네랑은 포인트가 다르다고. 고장난 기계 다루듯이, 그렇게 하라더라. 잘 안 돌아가면 니스칠도 좀 하고, 좀 이상한 부품은 갈아 끼우고. 환자들을 그렇게 대해야지 안 미친다고. 나는 예과 때는 그 말뜻이 뭔지 몰랐거든.”
“그래? 환자들이 어떤데?”
“그냥 뭐, 다양하지. 심각한 사람도 있고, 보기보다는 괜찮은 사람도 있고. 복잡해. 정신과 일이라는 게 원래. 나는 그래도 최대한 공감하면서 환자들 도우려고 노력하지. 물론 상담사는 아니지만, 그게 나름대로 중요하긴 하거든. 나는 뭐 나름대로 이겨내는 방법도 찾았고.”
민혁은 그 말을 하고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눈치였다. 형욱은 민혁의 짓무른 눈자위를 바라봤다. 형욱은 그의 얼굴에 안개가 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방법인데?”
형욱의 질문에 민혁은 잠시 고민했다.
“너는 말해도 이해 못 할 거야. 선택과 집중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말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애매해.”
-선택과 집중.
형욱은 그 말의 뜻을 더 캐묻지 않았다. 그는 민혁의 빈 잔에 다시 한 번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다시 한 번 정적이 흘렀다. 형욱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민혁의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오늘 형욱이 그를 찾아온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어쩌면 어서 그 이야기를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것인지도 몰랐다.
“저기, 민서는 어떤 환자였어?”
형욱은 질문을 던지고선 민혁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민혁의 얼굴에선 당황한 기색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형욱은 명함을 꺼내 민혁에게 건넸다.
“이게 민서가 읽던 책에서 나왔어. 민서가 책갈피 대신해서 썼던 것 같더라. 나도 이거 보고 너한테 연락했던거야. 물론 찾아와 준 게 고마운 일은 맞지만, 솔직히 그 때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애가 갑자기 왜 내 아내 장례식장에 찾아 왔나 했었어. 먼저 연락 좀 하지 그랬냐. 나 혼자서 되게 고민 많이 했는데.”
목이 말랐다. 형욱은 물 대신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조금씩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민혁은 대답을 하는 대신에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처음부터 민서가 왜 자살했는지 나는 쭉 궁금했어. 그리고 왜 민서가 나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갑자기 죽었는지도 모르겠어. 민서 자던 방, 내 방에서 10 초도 안 걸리는데 여는 데는 3개월이 걸리더라. 근데 처음 보는 책에 네 명함이 꽂혀 있더라고. 그냥, 내가 몰랐던 것들을 말해주라. 어떻게 서로 알게 됐는지, 둘이 무슨 사이였는지, 그딴거 진짜 나는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 그냥 왜 그랬는지만 알려주면 좋겠어. 나는 그것 때문에…”
형욱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침을 삼켰다. 그녀 때문에 울지 않기로 다짐한 것이 바로 어젯밤의 일이었다. 사실 그는 매일 밤 그 다짐을 하고 있었다.
민혁은 조용히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너, 제수씨 우울증인건 알고 있었냐?”
그는 그녀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녀가 살아있을 적에 사용하던 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위의 것들을 정리하고 나아가는 삶. 그것이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항상 주위를 어지럽히면서 살았던 그가 그녀를 사랑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경찰들과 함께 방 안을 둘러보았을 때에도 그는 그녀의 책상만큼은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 그에게 남은 민서의 유일한 흔적이 망가지는 것을 그는 원치 않았다. 담당 수사관이 그를 지켜보는 가운데 조심스레 이것저것 들춰봤을 뿐이었다.
“이상하단 말입니다.”
그 날, 넋이 나간 채로 앉아있던 형욱에게 담당 형사가 옆에 다가와 한 말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자살을 할 때면 죽은 자리 옆이든, 어디든, 유서를 눈에 쉽게 보이는 곳에 놓아 둬요. 유서가 없는 경우에는 하다못해 눈에 확 띄는 이유가 다들 하나씩은 있어요. 뭐 정신질환이라던가, 빚이라던가, 도박이라던가, 하는 것들. 그런데 고인께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어요. 자리가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정리되어 있단 말입니다. 지나치게 깨끗해요. 정말, 의도적으로 자신이 왜 죽음을 택했는지 숨기려는 것처럼 말이죠. 마치 누군가가 다녀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그 말을 하고선 형욱을 빤히 바라봤다. 그의 반응을 살피려는 눈치였다. 형욱은 그제야 눈을 돌려 형사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형욱과 눈을 떼지 않았다.
“정말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까?”
그때 그는 형욱이 민서를 죽였다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물론 형욱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멀쩡히 잘 살던 여자가 갑자기 자살을 택했다는 것은 어느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긴 했다.
그는 메두사가 자살을 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녀 곁을 지켰을 눈 먼 자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녀의 숨결이 희미해지는 중에도 그는 메두사가 짓고 있었을 절망적인 표정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가 어디에 누워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가 대답하길 기다렸을 것이다. 대답이 없는 그녀를 기다리며 그저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메두사는, 그 모든 장면을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민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했더라고.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어. 네 핸드폰이든, 우리 동창회 책자든, 어디서든 찾았겠지. 아무튼 자기가 형욱이 네 아내라면서. 자기가 우울증인 것 같으니 좀 도와달라고. 아는 정신과 의사가 나뿐이라고. 그래서 한 번 불러서 검사를 했어. 정말 심하더라. 그래서 처음 몇 주 간은 너한테 말하자고 설득했다. 절대 말 않겠다더라.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우울증. 익숙하지만 생소한 단어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울증이었다고. 너는 몰랐겠지만.”
형욱은 민혁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너한테 말하면 네가 견디지 못 할 거라고 하더라. 그걸 보느니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옆에 두는 게 낫다고.”
형욱은 심장이 조이는 느낌을 받고선 가만히 가슴을 움켜쥐었다.
-눈이 먼 사람.
“언제부터?”
민혁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형욱이 술을 한 잔 더 마시기를 기다렸다. 형욱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순간 그는 눈 앞에 아른거리는 술병으로 자신의 머리를 깨 버리는 상상을 했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 그의 눈을 뒤덮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종잡을 수 없이 많은 질문들이 형욱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몰래 말 했어도 됐잖아. 내가 눈치 못 챈 척 민서한테 신경 써 줄 수도 있었잖아.”
민혁은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제수씨 너한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미친듯이 노력했어. 그것조차도 또 다른 정신병처럼 보일 만큼. 나는 무섭더라. 혹시라도 네가 실수하면, 아니면 네가 하는 행동들이 갑자기 달라졌다고 느끼면, 제수씨는 아마 바로 눈치 챘을거야. 나는 그렇게 됐을 때 제수씨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어. 미안하다.”
형욱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담당 형사는 그의 마음 속 의심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지는 않았다.
이미 뒤져본 책상을 다시 뒤져보는 일은 무의미했다. 그는 다만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과 사무용품들을 하릴없이 바라보며 그녀와의 추억을 곱씹어 보려 노력할 뿐이었다.
민서는 항상 독특한 방법으로 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전하곤 했다. 흐트러진 것을 보면 정리하지 않고는 못 배기던 그녀의 성격은, 다른 이들에게서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던 데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래서 형욱은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그녀의 속마음을 몰라 혼자 조바심을 내며 고민하곤 했다. 그녀는 외려 그의 그런 모습을 사랑했다.
“너는 나를 위해서 항상 고민하잖아. 나는 그거면 충분해.”
그가 그녀에게 청혼한 날 밤, 그녀가 그의 손을 잡으며 그에게 건넸던 말이었다.
그는 그날 밤 그녀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환한 미소를 기억했다.
-그게 문제였던 걸까.
형욱은 고개를 숙였다. 이미 그녀는 죽었다. 그녀가 언제부터 죽어있던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냥, 민서 잘 챙기라고만 했으면 됐잖아...”
민혁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를 바라보는 형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수씨, 그 와중에도 너를 참 아꼈다.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씨발 그거 다 핑계잖아…그래도 알려줬어야지…”
“야 내가…”
갑자기 형욱이 책상을 내리쳤다.
“씨발 다 핑계잖아! 너는 의사고! 나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
유리잔들이 흔들렸고, 술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흘러나온 술이 주변을 적셨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그를 바라봤다. 놀란 직원이 주방에서 고무장갑을 낀 채로 달려나왔다. 그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는 여전히 민혁의 표정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너는, 너는 씨발, 너는 씨발! 너는! 너는 나한테, 한 마디만, 한 마디만 해 줬어도!”
민혁이 조용히 일어나 그를 붙잡았다.
“야 형욱아. 진정해라. 너 취했어.”
형욱은 민혁의 얼굴을 바라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민혁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너는 씨발, 아무렇지도 않냐? 야…이 개새끼야… 너 씨발 5년 전에도 그랬어? 이 새끼 이거 눈 하나 깜짝 안하는 거 봐. 넌 아무렇지도 않았냐? 아니면 그 때 그 새끼 뒤진 이후로 너도 이상해진거냐?”
형욱은 말을 내뱉는 순간 자신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 헛구역질이 나왔고, 그는 가까스로 그 감정을 참아냈다. 민혁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형욱아. 너는 내 걱정 조금이라도 했었냐?”
민혁이 조용히 물었다. 형욱은 대답하지 못하고 조용히 그를 놓아 주었다.
“야. 나 정신과 의사야. 나는 최선을 다 했어. 최선을 다 하지 않은 것은 너야. 몇 년 동안 제수씨 혼자 힘들어 할 동안 네가 한 게 뭔지 생각해봐. 내가 너한테 말하지 않은 게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해?”
형욱은 대답할 수 없었다.
“너…이…”
“야. 정신 좀 차려라. 네가 지금 이러는 모습 보면 제수씨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는 민서를 생각했다. 형욱은 조금 비틀거리다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앉았다. 민혁의 말에는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형욱으로서는 민서가 틀렸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을 통해 보여줘야만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그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안하다. 요새 내가 제정신이 아니야. 오랜만에 와서 괜히 지랄맞네.”
그 말에 민혁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 앉아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가 너 이해 못한다는 게 아니야. 제수씨 생각도 해야지. 너 이러고 살까 봐 죽기 전까지 제수씨가 얼마나…”
민혁이 말을 멈췄다. 정적이 흘렀다. 형욱은 민혁이 왜 갑자기 말을 멈추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구역질이 났다.
-메두사는 자살을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페르세우스의 흔들리는 눈빛을 바라봤다.
“야, 이 씹새끼야… 너, 씨발, 찾아낸 방법이라는 게…”
그는 조용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깨진 유리병 조각을 주워들었다. 손에서 피가 흘러 내렸지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는 것도 듣지 못했다.
그는 일어나서 민혁을 노려보았다.
“너, 메두사가 뭔지 아냐?”
형욱은 처음으로 민혁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민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모든 게 우스웠다. 형욱은 웃음을 터트렸다.
“너나 나나, 씨발…”
유리 조각의 끝이 그의 눈을 향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