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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소설] 렛미인: 소극적 반달리즘

by 고우 201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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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책표지


 외로운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은 욘 A. 린드크비스트의 「렛미인」은, 그 기괴하고 어두운 배경과 맞물려 「트와일라잇」같은 보통의 뱀파이어 소설과는 구별되는 매우 독특한 서사 구조를 형성하면서도 미성숙한 개인이 완전히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이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는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러한 작품에 대한 주된 해석은 잠시 제쳐두고, 작중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인 인식과,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개인들의 대응 방식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작품에 대한 보다 풍부한 해석을 시도해 보려 한다.

 이러한 작업은 먼저 서사의 배경이 되는 스웨덴 스톡홀롬의 교외 지역에 위치한 블라케베리라는 도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프롤로그 공간은 이 도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담고 있는데, , 이 도시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곳이 아니착수단계부터 면밀히 계획된”(113pg) 근대화의 산물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전근대성과는 완전히 단절된, 심지어 교회조차 없는”(115pg) 이 도시의 공간적 특성은, 그러므로 스웨덴 '근대화'의 정신을 온전히 담지한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근대화라는 문제에 집중하여 이 소설을 살펴보면, 전근대로부터 단절되었다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이 도시 전체가 마치 근대화의 성과를 평가하는 하나의 실험실처럼 보이고, 인물들은 그 실험실에서 살아가는 피실험군으로 보이게 된다. 그리고 사실상 작가가 실제로 이 공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이 공간에 대한 묘사가 사실상 작가의 근대화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공간에 자리잡은 민중들의 삶은 근대화가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훌륭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렛미인」의 등장인물들의 삶은 하나같이 어딘가 결여되어 있고 불안정하다. 청소년들은 아파트 지하실에 모여 본드를 흡입하고, 중년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술집에 모여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과 돈을 허비한다. 아이들에게 집은 화목한 안식처라기보다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만이 남은 속박의 공간이 되어버렸고, 학교는 교육과 인격 함양의 장이 아닌 폭력과 냉소가 판치는 갈등의 장으로 기능한다. 인물들의 삶 속에서 사실상 전통적으로 중요시되었던 가치들은 모두 파괴된 것처럼 묘사되는데, 예컨대 가족관계는 해체되고(오스카르, 톰미), 인간관계에도 깊이가 없고(비르기니아와 라케), 가슴 속에 화를 가득 품고 살아가는 것(스타판)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더해 경기도 나빠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 것은 물론이고, 이따금 언급되는 정치적인 상황들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 두 명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해줄 법도 한데, 작가는 가차없이 모두를 어딘가 부족한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인식은 시체안치실의 관리인인 벵케가 시체들에게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데, 도리어 지하 10미터에 복도들이 연결되어있다는 사실 자체에 소소한 편집증을 느낀다는 점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작가에게 근대화는 너무나 컸다. 너무나 조용했다. 너무나 공허했다.”(164pg)

 그러나 인물들이 근대화나 전근대적 가치들에 대한 인식을 가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벵케처럼, 그저 은연중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던 것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근대적 존재인 뱀파이어 엘리가 이들의 일상 속에 침투해 근대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의 삶 속에 전근대적인 공포가 자리잡는 순간, 그에 대항하는 전근대적 가치들이 소생의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비르기니아가 엘리의 습격을 받은 뒤에 라케가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끼며 내뱉은 다음 문장들은 이런 인식의 전환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여기. 이 모든 것. 블라케베리. 전부 다 하나의 거대한 지랄병 같아 계획하기론 완벽하다 싶었겠지. 그러다 지랄맞게 어그러지니까, 모조리 틀어지기 시작한 거야. … 안 돼. 여기서 살면 안 돼. 여긴 완전히 글러먹었다고.”(2134pg)

 

 사실상 오스카르가 엘리와 함께 도시를 떠나고, 톰미나 라케 같은 인물들 모두 그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꿈꾸거나, 최소한 잠시 휴가 여행좀 다녀와야겠다고(2339pg) 마음먹는 모습은,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을 하나로 엮는 공통된 욕망으로 등장한다. 이는 근대적 사회에 대한 개개인들의 회피적 태도인 셈이다.

 그러므로 작품은 근대 문화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보임과 동시에,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인의 존재는 부정함으로써 뱀파이어라는 전근대적 존재를 통해 그것을 간접적으로 무너뜨리는 매우 소극적인 반달리즘의 자세를 지니고 있다고 평할 수 있겠다. 작중 인물들에게서 시대나 사회상에 대한 인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시대적 맥락은 그저 사회에 싫증을 느낀 개개인들의 사랑이나 소망 따위의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정들로 치환되어 등장하고, 무엇보다 엘리에 의해 파괴되어버린 일상은 그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발견해 나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린다. 결국 인물들은 단지 주어진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이 작품의 뚜렷한 한계임과 동시에, 어쨌든 인간은 그렇게 버텨나간다는 매우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가르침을 주며 이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공고히 한다. 어쨌든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했다. 사회 속에서 소외되었던 개인들은 이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로 변모하고, 그렇게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우리는 말하자면 여러 가지 가능성의 거센 물결 속에서 끊임없이 전복될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며, 그러나 언제나 이에 맞서서 다시 일어날 용의를 갖추고 살고 있는 것이다.[1] 작품의 열린 결말은 이를 암시한다.

 


[1] Jaspers, and 황문수. 이성과 실존 [전자자료] / 칼 야스퍼스 지음 ; 황문수 옮김 (2014).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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