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곰문곰문'에 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우연히 생겼다.
생각보다 지적인 자극을 유발하는 지점이 있어, 다른 곳에 작성한 글의 일부를 빼와 이곳에 정리한다.
곰문곰문
다음은 몇 해 전 SNS 등 온라인상에서 잠깐 화제가 된 적이 있는 웹 소설의 일부입니다.
(‘노벨피아’라는 플랫폼에 올라온 야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제목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용은 일반적인 웹소설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마지막 줄만큼은 아주 참신합니다.
주인공이 죽인 곰이 비탈길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을 ‘곰 문 곰 문 …’으로 표현한 것이죠.
텍스트와 이미지의 묘한 경계에 위치한 ‘곰 문 곰 문…’은 문자의 한계를 뛰어넘어 독자로 하여금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게 합니다. 180도 회전하는 문자의 단순한 반복에 힘이 축 빠지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그런지 적막 속에 비탈길 아래로 떨어져 사라지는 곰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곰이 굴러 떨어진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는 사실 ‘비탈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라는 바로 직전의 문장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가는 그걸로 불충분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단락 전체를 살펴보면,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곰의 목을 ‘우드득!’ 비틀고, 목숨이 끊어진 곰이 힘없이 비탈길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이 시간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격렬한 다툼과 다툼 이후의 소강상태가 순식간에 대비를 이루며 독자에게 더욱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것이죠. ‘곰’이라는 문자의 의미를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이미지의 역할을 새로이 부여하려는 시도는 독자들에게 해당 장면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도 문자의 본질적 속성 - 그 자체로는 ‘무음’이라는 점 - 은 그대로 남아 ‘정적’을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게 뭐야’ 싶지만, ‘곰 문 곰 문…’을 빼고 위의 글을 다시 읽으면, 이젠 밋밋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전달하려는 정보(=’곰이 죽어서 굴러 떨어진다’)의 데이터 형태(텍스트)가 시각적인 무언가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데이터에선 얻을 수 없었던 정보들이 새롭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체감'을 하는 것이죠.
모달리티 변환과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
모든 정보는 다양한 형태로 변환되어 전달될 수 있습니다. 마치 에너지를 사용할 때 열에너지, 빛에너지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환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에너지가 특정한 형태로 변환될 때엔 늘 소실이 발생하듯, 정보 또한 1) 그것이 데이터로 포착되고 2) 누군가에게 전달될 때엔 소실이 발생합니다. 예컨대 내가 산 정상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글(텍스트 데이터)로도 묘사할 수 있고, 사진(이미지 데이터)으로도 찍을 수 있습니다. 또는 우아하게 그 풍경을 떠올리며 교향곡(소리 데이터)을 작곡할 수도 있겠습니다. 풍경 자체의 정보를 최대한 잘 전달하려면 사진이 가장 낫겠지만, 내가 그 풍경을 바라본 순간 느낀 감정을 전달하는 데엔 아무래도 글이나 음악이 더 낫겠지요. 그러나 어떤 방식을 채택하든, 모든 정보를 다른 누군가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정보 전달의 본질적인 한계는 우리에게 집중하고자 하는 정보에 따라 특정 형태의 데이터를 채택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곰 문 곰 문...'은 전달하려는 정보를 시각적인 형태로 가공함으로써 정보 전달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즉, 텍스트 형식의 데이터를 이미지로 전이(Transfer) 내지는 매핑(Mapping)하는 과정인 셈입니다. 그러나 왜 굳이 '이미지'일까요? 이는 정보가 전달되는 형식으로는 시각 데이터가 유용한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각 데이터가 유용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데이터를 받아들일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습니다. 텍스트 형식의 정보를 읽는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한글의 경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단어들을 순차적으로 읽게 됩니다. 소리 데이터 또한 음소들의 순차적인 흐름에서 정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냄새나 맛, 촉각 같은 것들은 애초에 디지털 형태로 가공하기가 어려우니 논외로 한다면, 이미지는 인간의 뇌에 순차 처리를 요구하지 않는 유일한 데이터 형식인 셈입니다.
물론 영상의 경우엔 분명한 시계열 데이터라고 주장하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변화하는 이미지들의 변화를 편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은 본질적으로 개별 이미지를 처리하는 데에 필요한 인지적 부담과 시간이 굉장히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때로는 글이, 때로는 소리가 필요한 상황도 많지만, 복잡한 데이터의 양상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엔 시각 데이터가 매력적인 선택지일 것입니다.
다시 ‘곰 문 곰 문...’으로 돌아와 이 문장이 매력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이미지화된 ‘곰’이라는 문자를 다시 문자라는 한계 안에 집어넣으면서 해당 문장을 이미지들의 나열, 즉 ‘영상’으로 기능하게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정리
우리가 '곰 문 곰 문...'에서 '참신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모달리티의 중첩에 있을 것입니다.
'곰'과 '문'을 반복했을 뿐이지만, 텍스트는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는 다시 텍스트 안에 갇힙니다.
빠른 인식을 가능케 하는 이미지와 느린 인식을 강요하는 텍스트를 중첩시킨 셈이지요.
두 모달리티의 간극 속에 갇혀 버린 곰의 죽음은, 텍스트 데이터의 물성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영상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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