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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짧은글(2): "사투리 좀 고쳐라!"

by 고우 2019.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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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좀 고쳐주지 않을래~?^^

 최근 한 커뮤니티에 자신의 학과 친구에게 "사투리를 고쳐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친구가 화를 냈다"라며, 자신이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를 묻는 글이 올라온 일이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어 보이는 그 글에, 수많은 사람들, 특히 "지방 사람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지방 사람"- 나는 지방 사람이다. 나의 고향은 광주광역시이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서울 사람들과 교류하고, 지금은 계속 서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제 내 입에선 자연스럽게 '서울 말'이 나오지만, 여전히 나는 가끔씩 사투리를 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짧다"를 [짤따]라고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짭따]라고 발음한다. 나는 내 고장 사람들이 '짧다'를 [짤따]라고 발음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문법 공부를 할 때도 이게 왜 [짤따]라고 발음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서야 서울 사람들이 '짧다'를 [짤따]라고 발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전까지는 문법만 그런 줄 알고 있었다. "오매!"라는 감탄사도 나에겐 일상적이다. 이 단어는 내가 깜짝 놀랄 일, 감탄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오매"라는 말을 내뱉는 과정은 너무도 무의식적인 것이라서 나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서울 토박이도 내가 광주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투리 하나도 안 쓰네?"라면서 깜짝 놀랄 만큼 내 사투리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찌 됐든 나의 '언어'인 '전라도 사투리'는 내 머릿속에 금속활자처럼 각인되어 있다.

 사투리에 관한 나의 기억은 그렇게 좋지 않다. 그중에서도 고등학생 때의 기억은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때 나는 학교 대표로 서울에 캠프를 갔었다. 여러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할 일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는데, 첫 문장을 내뱉는 순간 누군가 내 말투를 따라 했고, 그 자리에 있던 30명 가까운 학생들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고등학생 때였으니까, 살면서 만나고 교류했던 사람은 전부 다 광주 사람이었고, 당연히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던 때였다. 분명 그것은 나를 싫어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나는 일종의 환영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더 정확히는 나 자신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 사람'을 환영하는 것이었다. 나의 사투리는 그들에게 '귀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귀여운 촌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발표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웃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잘한 일이었다. 모두가 웃는 분위기에서 혼자 정색을 했다면 "유난이다", "예민하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게다.

 사실 사투리를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사투리는 꽤 재밌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반응은 정겨운 축에 속한다. 그러나 말투에서 드러나는 내 출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렇게 드러난 내 출신지역에 대한 은근한 차별적 시선에 있다. 그때 캠프를 진행하시던 선생님은 내가 버스 창 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광주에는 이렇게 높은 건물들 없지? 올라온 김에 많이 구경해"라며 선심 쓰듯 말을 했다. 어린 나는 순간 황당하여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광주에는 테헤란로의 양 옆에 늘어선 고층빌딩들만큼 멋진 건물들이 없다. 남산타워 같은 랜드마크도 없다. 그러나 그때의 창 밖 풍경은 광주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동대문쪽을 지나고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높은 빌딩이 많은 것이 어떤 식으로 자랑거리가 되는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광주에는 그 정도의 빌딩들도 없을 것이라는 은근한 무시가 깔려 있는 말이었기에 기분이 나빴다. 서울에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데에 그 사람이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그냥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나에게 그들의 풍경을 바라보는 은혜를 베풀려 했던 셈이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알았다고 하면 그런대로 그런 편견에 동조하는 셈이었고, 광주에도 이 정도 건물들은 있다고 말하면 괜히 자존심 세운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나는 선생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냥 내 사투리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일을 손쉽게 해냈다. 이를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전라도 사람들은 대개 사투리를 빨리 없앤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울말과 전라도 말은 비슷한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전라도 사람들이 8,90년대를 거치면서 일자리를 찾아 대거 상경한 영향이란다. 나는 과거 내 고장의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와야 했던 속사정에 대해서는, 그 역사에 대해서는 감히 짐작만 할 뿐 알지 못한다.

 우리 세대는 더 이상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지역차별의 문화를 경험하지 않는다. 단지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직장 상사에게 온갖 종류의 폭언을 듣거나 승진을 하지 못하는 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차별의 문화는 여전히 우리의 곁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가, 나의 사투리에 웃음을 터트렸던 그때의 그 학생들처럼, 나에게 선심 쓰듯 말했던 그 선생님처럼 갑작스럽게 '장난처럼'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광주는 폭동이다", "까보전(범죄자는 까 보면 다 전라도 사람이다)"과 같은 표현들이 범람한다. 지역차별은 전라도가 아닌 지역들에도 폭격을 퍼붓는다. "멍청도", "고담 대구" 같은 표현들은 모두 지역차별의 문화를 반영한다. 그런 단어를 내뱉는 이들에게 정녕 악의가 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들은 어쩌면 그것이 '진정으로 옳다'라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 나의 고향을 물을 때마다 과연 "전라도 광주"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을지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하곤 한다. 그 사람이 방금 전까지 페이스북에서 '까보전'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던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것을 소유한 자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통해 규명되는 법이다. 문화는 이렇게 나의 삶을,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역차별의 문화는 완전히 소멸할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문화는 언제나 누군가에겐 폭력일 수밖에 없다. 서울이라는 권력. 그것에 대한 굴종의 요구. 아마 "사투리를 줄여달라"는 부탁이 어째서 그렇게 문제가 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 출신을 가리고 있는 서울말을 가만히 놔둔다.

 "오매, 귀찮아라."

 

사진 출처: https://m.ppomppu.co.kr/new//////bbs_view.php?id=freeboard&no=6407622&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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